하늘에 검은 어둠이 드리우고 달마저도 숨을 멈춘 밤.
그렇게 하늘이 어둠에 잠겼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대지는 조금은 밝은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풍으로 느껴지는 이 느낌은 다름 아닌,
뜨겁고 비린, 피의 향-
"하! 웃기는군. 무의미한 발악은 그만 둬." -???
"이미 늦었어.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어."
흐려진 시야 사이로 하얀 머리카락과 청안의 한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가 비웃자 그의 앞에 있던 한 여자가 나지막히 말했고,
그는 그대로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를 빼들었다.
"내가 이런다면 어쩔래?" -???
"웃기지마, 넌 이제 더 이상 내 몸에 손 끝하나
대지 못해."
그의 앞에 있던, 마찬가지로 하얀 머리색과 청안을 가진 여자가
의지에 찬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하자 비웃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일순간에 분노와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너야말로 웃기지마. 그렇게 크게 다쳐놓고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군.
뭐, 나와 여기 쓰러진 14명을 혼자 상대한 정도면 양호하지." -???
그녀는 온 몸에 붉은 피를 뒤집어 쓰고서 그 남자에게 당당하게 말했고,
그녀와 그의 주위에는 14명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레이피어(rapier)가 두 자루 들려있었으며,
그 검의 칼날을 타고 흐르는 것은, 다름아닌 붉은 액체.
그리고 그 가녀린 몸이 뒤집어 쓴 것은 수 많은 상처와 피.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다시금 비웃었다.
"풋.....농담하는 거지?
이 상황에서 네가 빠져나갈 수 있다고?" -???
"어디 한 번 시험해봐."
그녀가 비장하게 말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그 검을 그녈 향해 겨누었다.
광기어린 미소를 띤 채로. 씨익 하고 섬뜩하게 웃는 그 자는,
완전히 미쳐있는 것과도 같은 상태인 듯 했다.
"걱정마. 죽음은 영원하지만, 고통은 일순간일테니." -???
"..................."
그는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말과 함께 검으로 찌를 준비를 했다.
그 순간,
"큭.....! 뭔.....!!" -???
갑자기 빛들이 그녀를 에워싸더니 남자의 검이 튕겨져나갔다.
환하게 빛나는 그 빛 속에서 사라질 듯 말 듯 애매하게 자리잡은
그녀는 그저 자신의 앞의 남자를 째려볼 뿐이었다.
그 푸른 눈동자에, 무엇을 담고있는 것일까.
"윽.......배신자 주제에....뭘하려는 거냐." -???
남자가 검을 놓쳐 꺾인 손목을 감싸며 여자를 째려보곤 말했다.
여자는 인상을 풀고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피식 그 남자를 비웃어주었다.
"...........글쎄다."
그녀는 그 한마디를 마친 뒤 눈을 감았고,
이윽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빛이 그녀를 가렸다.
남자는 또다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죽으려는 거냐?" -???
그녀는 그저 말없이 피식 슬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끝으로 빛이 다시 한 번 환하게 비추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그의 것과 똑같은 그녀의 검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젠장.....놓친..건가......" -???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던 하얀 머리의 남자는
마치 포효하듯이 그녀가 사라진 뒤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 나타니엘-!!!" -???
이내, 그 남자도 마찬가지로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고요한 어둠 속에 잠기고.
그제서야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달은
대지에 흩뿌려진 붉은 물방울들을 빛낼 뿐이었다.
Pro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