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찬, 명령이다. 네 앞에 있는 녀석의 흔적......." -시엘
눈에서 나오는 빛과, 예사롭지 않은 그 눈 안의 문양.
"그 흔적을, 이 세상에서 지워라." -시엘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펄럭이는 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순간 달을 가리는 검은 연미복과, 그 사이에서 빛나는 적안.
그리고 울려퍼지는, 익숙한 목소리.
"Yes, my lord." -세바스찬
그는 그렇게 허공에서 아래에 있는 사카엘을 향해
가지고 있던 나이프를 던졌고,
사카엘은 날개로 일으킨 바람으로 그것들을 튕겨내었다.
"도련님!!"
그것들이 그녀와 시엘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자 그녀는
황급히 시엘을 감싸 안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푹하고 무언가가 찔리고 베이는 소리.
그 소리에, 그녀는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세......."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도련님. (-)." -세바스찬
언제나처럼 그는 그녀의 앞에 있었고, 팔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떨어져내려 달빛에 반사되었다.
"세바스찬.....!!"
그녀의 걱정으로 가득 찬 표정에 세바스찬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싱긋 웃으며 다시 사카엘을 향해 나이프를 던지며 달려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걸까.
도와줘야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걱정하는 그녀에게
시엘이 나지막히 말했다.
"도와줄 필요는 없다." -시엘
"그렇지만 그럼 세바스찬이......!!"
"상관없어. 세바스찬은......" -시엘
그녀는 자신을 마주보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래. 그 눈에 새겨진 것은, 언젠가 세바스찬.
그의 손에서 본 문양과 흡사한 문양.
그 눈에 그녀는 천사와 아무렇지 않게 싸우고있는 그를 보았다.
"악마이자, 나의 충실한 개이니까." -시엘
그렇게 멍하니 한참 그 장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작게 읊조렸다.
"거짓말........."
말도 안돼. 악마? 천사?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책이나 상상속에나 있었던 자들이다. 그런데. 왜.
이건 현실이지만 동시에 현실이 아니기도 하다.
사카엘이라는 자가 천사고, 세바스찬이 악마라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녀가 믿지 않는다면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렇게 그녀는 한동안 굳어있을 뿐이었다.
"쳇.... 성가시게.....!!" -사카엘
사카엘은 이내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세바스찬이 던지는 나이프를 쳐내어 아래에 역으로 던진 뒤
하얀 깃털 몇 개 만을 남기고서 사라져버렸다.
"(-)....! 도련님....!" -세바스찬
세바스찬은 떨어지는 나이프를 막아낸 뒤 그제서야
그들에게 향했다. 나이프에 찔려 피가 나는 그의 팔과
꽤나 너덜너덜해진 그의 연미복.
그런 그가 자신에게 뻗는 손에 그녀는 흠칫하며 조금 주춤했다.
"(-)........." -세바스찬
세바스찬은 그제서야 그녀에게 건넨 자신의 손이
피로 물들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서 장갑으로 닦아낸 뒤
다시 주저앉아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서선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당신...... 대체 뭐야......."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두 주먹을 꽉 쥐고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는 그녀를 보던 그는, 이내 뻗던 손을 거두었다.
시엘은 한숨을 내쉬며 안대를 다시 쓰고 있었다.
"도련님..... 진짜에요....?
진짜로...... 꿈이나 속임수같은게 아니라.....?"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엘을 보며 말하자 시엘은 후회하는건지
눈을 딱 감고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현실이 아니라고 믿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녀는 이를 으득 갈며
주먹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대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