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피가 방울방울 튀긴다. 그렇게 몸을 꽁꽁 싸맸는데도 그 틈새를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겨울에는 보온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여름에는 죽을 맛이다. 하지만 얼굴을 쌩으로 내놓고 다녔다가는 수배범이 되어 단두대에서 뎅강이거나, 사회에서 매장당할 것이 뻔할 뻔자였기 때문에 천을 번데기마냥 둘둘 감고 다닌다.
["초록색."]
이건 좀 위험하다. 산성이라 피부가 슬슬 녹아버린다고.
물통에 남아있던 물로 재빨리 피를 닦아내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살구색 손가락이던 파란색 몸통이던 간에 장시간 날뛰어버린 주변은 꽤나 처참했다.
잠시 가만히 앉아서 폐허를 찬찬히 눈에 담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던가. 이 바닥에서라면 크게 날뛰고 다니는 대형 양이지사들 정도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사연이 없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 저마다 사연을 하나쯤은 안고 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거나, 아니면 백성의 의무를 빙자한 나라의 명령에 가족을 놔두고 이 폐허에 발을 들였으리라. 허나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사람은 드물다.
우주 최강 전투민족이라 불리는 야토족은 '전투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이 난 곳을 찾아다닌다고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삭히기 위해. 쌓이고 쌓인 원망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어리광을 부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기에 가슴 속 깊이 지옥을 묻고, 뒤돌아서서 다시금 이유없는 검을 휘두를 뿐이다.
나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다. 증오를 풀어내기 위해 이 땅을 밟고 포효한다. 내가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와 닮은 녀석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어두침침, 검붉은 핏물만이 뚝뚝 떨어져내리는 전장 속에서 특히나 돋보이는 녀석들이 있다.
가령...
저기서 싸우고 있는 하얀 녀석 이라던가,
뒤에서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이 녀석 이라던가.
Good 이란 형용사를 붙일만큼 난 가치있는 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