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이 자그마한 세모라도 돌아다니는 듯이 아파왔다. 쿡쿡 쑤시는 그 느낌이 점점 심해짐과 동시에 시야가 점점 흔들려왔다.
나와 비슷한 이를 알아보는 본능은 조절이 퍽 어렵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다. 그 무언가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들은 나와 닮았다. 그 동질감이 무언가를 이끌어낸다. 이상하게 그들 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몸을 휘감는다.
허나, 그렇기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일어나서 떨리는 숨을 고른 채 걸어나간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리에 힘을 준다. 좋아. 잘하고 있어. 계속 이렇게 하는 거야.
전장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와 금방 헤어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걸어가더라도, 저 남자는 별 거 아닌 일로 생각하며 다시 칼을 휘두를 것이 분명했다. 내가 훗날 시체로 발견되더라도, 혹은 저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더라도, 말상대가 되주었던 서로에 대한 한 줄기 연민만을 보내줄 뿐 바뀌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날 좋아해줄 리 없잖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온다. 온 신경을 다리에만을 집중한다. 저 남자 앞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놓고서는 갑자기 픽 쓰러질 수는 없다. 이를 있는 힘껏 물고서 다시 한 번 발을 내딛었다. 정신력을 쥐어짜내서 온 신경을 두 발과 두 다리에만 쏟아붇는다. 일단 다 집어치우고, 여기에서 쓰러지는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게 먼저였다.
"위험하다!!!"어? 뭐라고? 잘 안들려. 좀 더 크게 말해봐.
개미 목소리마냥 작게 들려온 남자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쇠방망이와 뿔이 하나 잘린 천인이었다.
후웅-!
{"커헉!"}
크게 휘두른 방망이는 제대로 내 배에 박혔다. 겨우 아물기 시작했던 상처가 다시금 벌어지는 것이 쓰리게 느껴져오며 입 안에 피가 머금어졌다. 골이 뒤흔들리며 배가 큰 철공으로 맞은 것 처럼 아프다.
{"으....이으...."}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뭐야 이거. 이건 좀 너무하잖아. 피가 왈칵 쏟아지며 저만치 몸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붕 떠버린 몸은 빠르게 지면에 쳐박혔다. 저 근육 돼지 뚱땡이가. 쓸모 없이 징그럽게 근육만 많아가지고.
죽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죽음이 코앞까지 다녀오면 너무나 어이없게도 살고 싶다고 느낀다. 삶에 대한 오기가 끈적거리고, 또 지독하게 날 휘감아온다. 본능인가봐. 상처 부위가 아려져오며 끈적한 혈액이 느껴졌다. 피를 삼키고 눈을 질끈 감는다.
{".....젠장..."}
술이라도 거하게 마신 것 마냥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 머리는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 마냥 깨질 듯 아프다. 머릿속으로 욕을 몇 번이나 리플레이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내 눈앞에는 눈이 휘둥그레진 사무라이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아,
훅간다.
차라리 시작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