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강하지 못해서. 너를 지켜낼 수 없는 자리의 나여서. 널 행복하게 할 시간을 선물할 수 없어서. 오히려 난, 널 상처주는 위치에 있기에.
우주해적 하루사메의 제독인 나. 그리고 신센구미의 번대장인 너. 모두를 지켜내기 위해 넌 신센구미 번대장이란 위치를 선택했다. 살인, 고문, 행성의 멸망과 유지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나는 언젠가는 너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언젠가는, 서로에게 살기 어린 눈길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껏 전쟁을 즐길 수 있는 이 자리에 앉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너는 이런 날 완전히 바꿔놓았다.
잡을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고, 태양처럼 너무나도 빛나기에 너를 잡을 수 없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그리하여 약한 녀석들을 온 힘을 다해 감싸는 네가 싫다. 항상 뒤를 바라보며, 앞이 아닌 뒤로 걸어가 모두를 감싸는 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욕심이 나고 가지고 싶다.
소유욕과 집착이 점점 나를 광기에 빠뜨린다. 너라는 존재가 없다면 이젠 살아갈 수도 없는 내가 되어버렸다. 평안함을 안주로 삼아 유유자적 살아가던 아버지와 내 스승을 혐오했다. 하지만 넌 이런 날, 흠잡을 데 없는 강함만을 추구했던 나를 그들처럼 한없이 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너 하나만을 가지기 위해 너무나도 크나큰 약점이 생겨버렸다.
왜?
멍청하게 다른 녀석들을 먼저 생각하고, 너보다 다른 녀석들을 먼저 지키는 널 이해할 수 없다. 너에게 광기가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편히 미치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오는 보답, 짜릿한 쾌감을 왜 넌 거부하는거지?
나답지 않았다.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피어오르게 하는 너 때문에 난 더욱 인내할 수도 있고, 더욱 갈망할 수도 있다. 널 사랑하기에 난 더 나은 놈이 될 수 있고, 너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너의 그 밑바탕까지 낱낱이 끌어올리기 위해 그 어떤 끔찍한 짓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길까지 기꺼이 가 줄 것이다.
"카무이."
네가 나를 부르는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기에 몇 번이고 가면을 위에 덧씌운다. 기계적으로 눈꼬리를 휜 채 검고도 검은 욕망을 애써 감춘다. 너의 눈길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날이면 세상이 빛나고, 너의 눈길이 조금이라도 어둡다면 세상이 어둠에 잠식된다.
전장에 나가던 살육을 즐기는 나는 그다지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다. 완벽한 강함만을 추구하며 모든 도덕적 잣대에서 벗어나 피를 묻히는 나는 그다지 너와 어울리는 자가 아니다.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너. 그 밑바탕에는 나와 같은 광기가 깔려 있더라도, 너와 난 광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부터가 다르다. 애써 그 달콤한 어둠을 밀어내는 너와는 달리 난 그 모든 것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이렇듯 다른 나와 넌 절대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리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지마."
어이없게도, 피를 잔뜩 묻힌 나를 거부하지 않고 껴안아오는 너의 모습에,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차단시켜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쟁의 짜릿함이 주는 쾌락을 알았기에 다른 미적지근한 것들에는 관심을 줄 틈도 없었다.
하지만 넌 기어이 틈새를 찾아내고, 누구보다도 깊이 파고들었다. 심장 속 깊이,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괴로워도, 참을 수 없이 아파도, 그것들은 무시한 채 오직 너만은 지켜내고 싶다고. 내 눈에 오롯이 너만을 담아내고 싶다고. 네가 존재하는 바로 이 곳이 온 세계라고 느끼는 그 한 순간
나는 너를 미치도록 갈망한다.
첫사랑은 그 짧은 한 순간에 빠져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는 한다. 네가 아무리 내게 모진 말을 내뱉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도 그 뿐이다. 나의 눈에 비치는 너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애틋할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내 손 안에서 망가져가는 너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너를 잡지 못한다. 너의 숨결 하나하나까지 모두 간직하고 싶지만 그 마음을 숨기고 언제나 너의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심술이 난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너에게 계속 상처를 준다.
내 마음을 밖으로 토해내는 그 순간 너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깨어질지는 역겨울 정도로 알기에 끊임없이 목구멍에서 맴도는 진심을 도로 삼킨다.
사랑하는 너의 뒷모습이 나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기에 나는 너를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리하여 널 상처준다. 항상 모두를 지키며 감싸는 너와는 다르다. 가지고 싶다면 가지고, 흥미를 잃으면 버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와 난 모든 것이 다르다. 허나 다르면서 완전히 같다.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너와 난 다르면서 같다는 것을. 너에게도 역시 그 깊고 큰 광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런 나를 비웃으며 결국 너를 지켜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빠짐과 동시에, 너와 다른 사람이 함께할 것을 상상하며 살의에 몸을 맡긴다.
네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다. 항상 무한정 있고 싶은 열망 때문에 수많은 인파 곁에서도 뼈저린 고독을 느낀다.
"..잠시만 이렇게 있어."
전과는 다른 눈빛. 항상 생글생글 웃기만 하고, 정작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던 그 눈빛과는 달리, 거짓된 웃음을 오랜만에 지우며 으스러지도록 널 껴안는다. 지금 내 곁에만 존재하고, 내 곁에서만 숨을 쉬는 너의 존재를 세포 하나하나로 느낀다.
사랑해.
하지만 네가 끔찍하게 싫어.
이건, 완벽한
애증일거야.
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