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야토의 천적인데."ㅡ카무이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

"그래? 지구인들은 이런 걸 즐기나보지?"ㅡ카무이

{"응. 그럴거야."}


요시와라 꼭대기의 발코니에서 보는 꽤나 아름다웠다. 노랑, 주황, 빨강, 갖가지 타오르는 듯한 색깔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퍽 근사했다.
힘겨웠지만 우산을 쓰고 하늘을 바라보던 카무이가 더 이상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하늘에서 눈을 뗄 생각을 하지 않는 그녀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눈빛에 카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생각 하는건데?"ㅡ카무이

{"그냥저냥."}


그 공허한 얼굴을 더 보기가 싫어 카무이가 따끔거리는 얼굴을 가리고 애써 고개를 하늘로 돌렸다. 도대체 왜. 무슨 길을 걸어왔길래. 그 길에 누가 있길래.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거지?

카무이는 붕대로 둘둘 감은 손을 어느새 핏줄이 설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그것을 의식하고 손을 폈을 때는 이미 손바닥에 흉하게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작은 소리로 이를 까드득 간 카무이가 점점 지는 태양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으로 가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멸하는 태양빛이 사라지면서 점점 푸른 색이 하늘을 덮어갔다.


"....!"ㅡ카무이


다시 시선을 그녀에게로 고정한 카무이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그녀는, 꼭 금방이라도 스르르 가루로 변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타오르는 듯한 태양빛에 녹아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토록, 위태로워보일 수가 없었다.

순간 카무이가 숨을 멈췄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카무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그녀가 잡히지 않았다. 다급해진 카무이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잡힌 것은 고작 옷 한 자락. 눈 앞이 하얘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카무이가 앞을 더듬더듬 더듬어 겨우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잡았다. 하얗기만 했던 눈 앞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리며 시야에는 그녀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카무이가 힘 주어 잡아당겼다.


{"왜 그래?"}


휘청거리던 그녀가 금새 몸을 바로세우고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게 변한 눈동자에 카무이가 입술을 짖씹었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무서운 악력으로 카무이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 와중에마저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사라지지 마..."ㅡ카무이


허나 입 바깥으로 나온 말은 형편없었다. 맥이 빠질 정도로 흘러나온 힘 없는 말 한마디에 카무이는 속으로 욕을 수십번은 뱉어냈다. 그녀의 눈동자가 눈에 띄일 정도로 세차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껴안고 싶은 그 마음에 카무이가 냉랭하게 몸을 돌렸다.

카무이가 없어진 그 자리에, 그녀는 그대로 멍하니 서있었다.
=카무이와 함께 노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