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검게 물들고 모든 것이 고요에 잠긴 밤.

"벌써 어두워진건가........" -일호

인적이 드문 거리. 잠시 산책을 나왔던 듯한 한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보고선 혀를 쯧쯧 찼다.
새하얀 은발과, 새하얀 날개. 그리고 푸른색의 눈을 가진
그는 멍하니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응?" -일호

그러던 그 때, 약한 바람이 한 번 일어 수풀과 가로수를 건들였고
그는 그 바람을 맞다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일호

바람에 실려온 익숙한 그 냄새.
그 비릿하고도 뜨거운 혈향에 눈을 번쩍 뜨는 그다.

'이 정도 냄새라면......분명......' -일호

이거. 어쩌면 시체 하나 치울지도 모르겠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혈향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려간 끝에 나온 뒷골목. 가로등도 하나뿐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 캄캄한 그 속에서, 그는 입을 막았다.
심한 피비린내. 대체. 누가.

"이 쯤인 것 같은데......" -일호

일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확 와닿는 심한 피비린내에
조금 인상을 쓰며 코를 틀어막았다.
그렇게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자, 가로등 불빛이 애매하게
닿는 골목의 구석에서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일호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은, 끔찍한 시체 한 구.
온몸의 마디마디에는 칼자국이 나있었다.
토막을 내려했지만 힘이 부족해 미처 다 토막내지 못한 듯 했다.
특히 다리쪽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칼로 쑤셔진 건지
다진 고기마냥 흥건한 피와 악취를 풍겼고,
결정적인 것은......

".........." -일호

계속해서 푸욱하고 들려오는 소리.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더 안쪽의 골목에서,
이와 같은 냄새와 함께 푹푹 연속해서 찌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누가 이런짓을 하는거지?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일호는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선 더 안쪽으로 향했다.

"너.........." -일호

안쪽에는,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된 채 아까의 시체처럼
계속해서 다리를 칼에 찔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다리를 토막내려다가 잘 되지 않자 푹푹 찌르는 누군가.
구름이 한 번 비켜가고 달빛이 비추자, 희미하게 나타나는
그 자의 인영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누구?"

푹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소리가 멈추었다.
꽤나 어린 듯한 목소리에, 그리고 여자아이인 듯한 목소리에
두 번 놀란 그는 입을 가렸다.

"꼬마야, 너 지금 뭐하는......" -일호

그 아이는 그러더니 뒷걸음질을 쳤고,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서 더 안쪽으로 달려 도망쳐버렸다.
땡그랑하고 칼이 떨어지는 소리에 일호는 정신을 차리고서
그 아이를 쫓아갔지만, 그 아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파란 눈에 하늘색 머리카락........" -일호

그렇게 그 아이의 생김새를 곱씹던 그는 우선 시체를 치우기 위해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즉시 그 자리를 떴다.

하늘에 떠있던 은빛의 달이, 다시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그로인해 드리운 어둠은 붉은 피를 가린다.
함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