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오늘은 이걸......"

식물도감을 펼쳐두고서 오늘 채집하러갈 식물을 골랐다.
미리 일도 끝내놨겠다. 얼른 해지기 전에 갔다와야지.

"(-), 안에 있...... 윽." -이호

"아, 오셨어요 선생님. 근데 표정이 왜.....?"

"어지간히도 꽂혔구만. 정원이냐?" -이호

이호 선생님이 내 방에 잔뜩 있는 화분과 식물들을 보며
말했지만, 표정과 억양을 보니 기분은 좋아보이신다.
확실히 나도 내가 꽤 밝아졌다고 자각은 하고있으니.

"꼭 내가 아는 누구누구 같네." -이호

"누구요?"

"있어. 생명이니 뭐니 하면서 이런 거 엄청 좋아하는 인간.
아, 인간이 아닌가......" -이호

선생님은 끝말을 흐리시며 내가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자
이내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야한다는 것을 자각하고서 옷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 -이호

"네, 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방을 나서서 산으로 향했다.
어느정도 멀어져서 사람들이 날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쯤,
나는 특기를 써서 물방울 위에 올라탄 뒤 그대로 조종해
바로 산의 중턱으로 향했다.

"이 쯤에 있을 것 같은데......."

지하수의 흐름대로라면 내가 찾는 식물은 이 근처에 서식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흐름을 따라 깊은 곳 까지 오긴 했지만,
해 지기 전에 돌아갈 수는 있겠다 싶어 다시 찾기 시작했다.

'길 잃으면, 다시 지하수의 흐름을 따라 가면 되니까.'

이호 선생님은 특기를 연습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식물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물의 흐름을 읽거나
염력처럼 쓰는 등 꽤나 연습을 해왔다.
식물을 키우다보니 물을 조절하는 것도 꽤 늘었고 말야.

"좀 더 안으로 들어가봐야하나......"

그렇게 수풀을 해치고서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니
꽤나 어두웠다. 확실히, 이젠 노을이 지고 있기도 하고
나무가 무성해서 빛이 잘 들어오질 않으니......
역시 오늘은 무리인가 싶어 발길을 돌렸다.

"음?"

그 순간, 툭하고 발에 닿은 무언가.
금속의 느낌이었고, 무언가가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소리가 나서 나는 본능적으로 특기를 사용해 공기중의 물과
지하수를 끌어올려 몸을 감쌌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특기를 해제했다.

"폭탄.....? 같이 생겨서 놀랐는데 아닌가....."

나는 뭔가 기분이 나빠져서 그 깡통을 차버렸다.
처음에는 굴러가는가 싶더니, 굴러가는 도중 갑자기
경로를 바꿔 이쪽으로 날아왔다.
내가 놀라서 물을 조종해쳐내자,

"무슨....?!"

그 깡통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색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뭐지? 진짜 폭탄?! 안되겠어. 우선 물로 막아야....!

"어.....?"

어라? 이거 왜 이러지?
왜 갑자기 아무것도 되질 않는거야?
아냐. 이럴리가 없어. 이런 적은 없었다고.
근데 왜 하필 지금이야, 왜.
우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틀었고,
그 순간 연기사이에서 일렁이는 인영.
그리고, 연기 탓인지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당신......은......!"

서서히 감겨가는 눈. 사라져가는 시야속에 보이는 것은,
방독면을 쓴 채. 대신 평소의 온화한 미소로 꾸민 가면을
집어던지고서 내가 그 너머로 보아오던 끔찍한 미소를.
욕망과 야망에 가득찬 미소를 짓고있는 영감 하나.

「저기..... 왜 저만 신체검사 한 번 더 받는거에요?」

아아, 이제. 이제 알겠다.

「아아, 별 거 아니란다. 그런데 혹시 (-). 머리 아프지는 않니?」-소장

「조금. 속도 조금 울렁거리고.....」

「신체검사를 해봤는데 별 이상은 없단다.
피로가 겹친 것 같구나. 하루 푹 자면 괜찮아질거야.」 -소장


흩어져있던 퍼즐이 한 번에 맞추어져 가는 느낌이다.

「맞다, (-). 특기라는 걸 알고있니?」 -소장

역시, 당신을 믿지 않은 것은 옳았다.
하지만 당신을 더 경계하지 않은 것은, 실수이자 그른 일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다른 이들과 헤어지거나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안심시키고 언젠가는 당연히 오리라 생각하며
다시금 애써 웃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바라지 않았는데.

단순히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또 다시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빼앗길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대체 또 다시 무엇을.

나에게서 지금 막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당신은
나에게서 또 다시 무엇을, 빼앗아 갈 것인가.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정신과 함께 멀어져간다.



[Main Story : 하얀아이와 파란아이]
[Fin]
조금 더 행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