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진정이 됬어?" -백모래

"응.........."

한참 동안 울고 참고 특기까지 계속 썼더니 머리가 좀 지끈거렸다.
어느덧 하늘에 드리우는 것은 노을.
벌써 이렇게 되었다.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텐데.
그런 생각에 내가 서둘러 일어나려하자 오빠가 내 손을 붙잡았다.

"역시 (-), 무슨 일. 있었던거지....?" -백모래

오빠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말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그 얼굴에 다시 불신을 드리우긴 싫다.
이 이상 숨긴다고해서 나아지지 않아.
차라리 선생님과 오빠에게만큼은 말해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친구나 다른 애들이 부탁하면 어떻게 해?"

"보통 도와주지.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백모래

"오빠는 착하구나........"

"그런가...? 그렇지만 그건 너도 그렇잖아." -백모래

아니다. 오빠는 날 잘못알고있다.
내가 남들을 돕는 행동에는 그런 순수함 따윈 없어.
설령 목적은 순수하더라도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눌러담은 채.....
그런 도움은. 진정으로 돕는게 아냐.

"예전에 한 번, 이 특기라는 걸 내가 쓸 수 있다고
자각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일이 있었어."

"일.....?" -백모래

나는 오빠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잔디사이에 피어난 꽃 한송이를 보다가 시들었다는 것을
깨닫고서 공기 중의 물을 모아 시든 꽃을 다시 살려내었다.
오빠는 예쁘다며,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었고 난 머쓱해져서
볼을 긁적였다.

"예전에.....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유치원? 그런 곳에 갔었거든."

"한 4~5살 쯤이겠네......." -백모래

그러려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정원도, 작은 동물들 사육장도 있었는데.....
어떤 바보같은 남자애가 나무위에 올라간거야."

"그래서?" -백모래

" 그 녀석, 결국은 나무에서 떨어졌어."

그 말에 오빠 대충 예상을 했다는 듯, 인상을 조금 쓰다가
그대로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말했다.

"그만. 이제 그만해도 돼." -백모래

"그래서, 아까 오빠를 구했던 것 처럼 물을 끌어내었는데....."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마." -백모래

오빠의 표정과 말에 나는 무릎을 세우고 두팔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서 작은 목소리로 짜내었다.

"......병신같이 조절도 못해서 주변 식물이랑 작은 동물들이
전부 말라죽어버렸어."

오빠는 내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다른 이를 돕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날.
아름답던 정원은 시들어버렸고, 특기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이며 심지어는 다른 어른들까지 날 괴물보듯 보았다.
그 시선따위, 무시해버리자. 사랑받지 않아도 돼.
엄마아빠가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고있을테니.
그렇게 잊으려 노력하며 이 인근으로 이사왔다.
그런데 날 유일하게 사랑해주던 두 사람마저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때........"

또다시 슬픔과 우울함이 밀려와서 나는 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운 지 얼마나 됬다고 또 우는거냐.
눈물보다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 때..... 괴물이라고 나 스스로 인정하더라도.....
그 녀석을 죽이는 거였는데.......
"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내가 살인자가 되더라도 그 녀석의
칼을 쥔 손보다 더 빨리 심장을 멈춰버렸으면.
수분을 아예 빼앗아 말라죽였더라면.
그럼 엄마 아빠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후회를 수도없이 하며 과거를 끌어안아왔다.

"그래서......그랬던건가." -백모래

나는 고개만 까닥였다.
오빠는 그런 날 보며 한숨짓더니 이내 뒤에서 나를 안아왔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땐, 노을빛으로 물든
오빠의 머리카락과 날 보는 눈동자에 조금 고인 눈물이 보였다.

"괴물, 아니니까. 넌 그냥 너야." -백모래

그 말에 노을빛을 닮은 핏빛으로 물든 머릿속이

"다시 또 과거의 기억이 괴롭힐 때 널 도와줄 마법의 주문이야." -백모래

너무나도 어지럽고 지끈거려왔던 머릿속이, 그의 색처럼 하얗게 물든다.

"넌, 그냥 너야." -백모래

아아,

이제서야.

머릿속이, 맑아진다.
이미 가지고 있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