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이 온통 붉다. 가을의 단풍보다 훨씬 붉고 잔혹한 색으로
뒤덮인 연구소에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숨소리도. 그 무엇도.

"왜........."

주위를 둘러보니 연구원들만 죽은게 아니다.
실험체였던 혼혈들도 전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그 영감도 어쩌면 벌써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안돼. 죽여도, 내가 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찾는게 우선이다.

"선생님! 오빠! 오르카! 모두 어디있는거야...!!"

맨발에 밟히는 파편때문에 가뜩이나 산을 내려오느라 난
상처가 덧나 걸을 때마다 피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픈 것 따위는 요 몇 달간 내 일상이었다.
발바닥의 아픔 따위, 지금은 상관없다.

"대체..... 어디에.......!"

이호선생님도. 백모래 오빠도. 오르카도.
심지어는 빌어먹을 소장도. 전부 찾을 수가 없있다.
그 소장의 손녀라는 레드럼이란 녀석도 없다.
역시 아까 그 악마인지 뭔지 하는 녀석을 데려올걸 그랬나.
아냐. 분명 있을거야. 없을리가 없어.

"우선 약부터..... 큭......"

약품 보관소를 뒤져 내 기억에 남아있는데로 약을 만들어
특기의 적응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한결 편해지는 느낌에 다시 그들을 찾으려는 나의 시야에
천장에 달린 무언가들이 들어왔다.

"CCTV......."

번뜩 떠올라 발바닥이 아픈 것도 잊고서 달렸다.
가장 가까운 컴퓨터의 앞에서 다급한 손놀림으로
감시카메라의 영상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보던 도중, 갑자기 뚝하고
전부 하나둘 씩 꺼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나는 그 부분을 느리게 재생했다.

"누가 감시카메라를......."

그리고 영상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동시에 지나가는
익숙한 그림자와 이내 드러나는 하얀색에,
그대로 키보드 위에 있던 손이 힘없이 툭하고 떨어졌다.

"..........오빠?"

힘으로. 그 속도로. 그리고 총으로 .
모든 이들을 죽이더니 이내는 감시카메라에 총을 쏘아
작동을 멈추게 하는 오빠가 보였다.
분명 이 연구소를 이렇게 만든 것도, 오빠일 것이다.
놀랍진 않아. 힘이 생겼으니, 오빠는 복수한거야.
하지만 왜 선생님도 오르카도 보이질 않는건데.
그리고 어디로 가버린건데, 대체, 어디로.

"콜록........." -???

그 순간, 귓가에 울리는 작은 기침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생존자? 연구원이던 혼혈이던, 누구던 좋아.
지금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그 셋을 찾는게 우선이다.
나는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누구 있어요?! 들리면 대답해요!!"

제발 대답해줘. 더 이상 혼자는 싫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이 피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들리는 것은 비명과 단말마뿐인 삶은 더 이상 싫어.
혼자라는 외로움에 잡혀있고 싶지 않아.

"거기 누구 있......!"

그렇게 그 소리를 쫓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벽에 기다어 앉은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누군가가 보였다.
복사한 특기를 약도 없을 때에 마구 쓴 탓인지 눈 앞이 조금 흐리다.
조금 더 가까이. 한 걸음씩 더 가까이 앞으로 나아가
그 익숙하면서도 잔인한 색과 마주한 난.

"...........선생님?"

그저. 아무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피를 흘리는 그를 보며

"아..... 아아........."

울부짖는 것 이외에는

"아아..... 아아아아악!!!"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잡혀있는 삶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던 나였지만,


이런 식으로 혼자가 되기 직전에 둘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