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는 건, 귓가에 울리는 이명고 서서히 짙어져가는 비명 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수 많은 자들이 울부짖는다.
이것은 슬픔도 뭣도 아닌 그저 고통 섞인 비명.
그 깨질듯한 소리에 몸을 감싸는 한기에 그제서야 눈을 떴다.
"윽......."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일어나려 발버둥칠 때마다 들리는 것은 철그럭거리는
쇠사슬의 마찰음과 끔찍한 비명소리.
그만. 그만. 이 이상 듣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 눈을 감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내 앞을 가로막은 큰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뭐야........."
갇힌거다. 유리상자 속에.
안되겠다. 이젠 될대로 돼라.
나는 내 손목과 발목의 족쇄를 보다가 특기로 끊기로 했다.
물은, 다이아몬드도 자를 위력을 가지고 있다.
저번에 연습때는 바위였지만, 이것도 될 지 몰라.
손목이 잘리지 않게 조심하자는 생각으로 나는 특기를 사용했다.
"우웁........."
눈 앞에 공기중의 물방울을 모으자마자 구토감이 밀려왔다.
속이 안 좋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온다.
물방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나는 특기를 풀어버렸다.
뭐야. 대체 왜..... 어째서.....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군." -???
그렇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서 순간 흐릿해졌던
시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 목소리 정도는 머리가 아파도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생생하고 너무나 듣기 싫었던. 그 목소리였으니까.
"보통 이라면 특기를 쓰기는 커녕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말이지." -소장
"당신.........."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어 그 자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째려보자 오히려 그게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는다.
역겹다. 역겹다 못해 살인충동까지 느낀다.
"반응을 보니 이미 예상했었던 모양이군, (-) 양." -소장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마......"
"더럽다라.... 썩 기분 좋지는 않구만." -소장
알고 있었다. 저 자가 말한 연구란것이, 이런 것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짓을.....
대부분이 혼혈이다. 아니, 여기있는 자들은 날 제외하고 전부 혼혈이다.
그 딴 연구를 위해 이 때까지.......
나를 보며 좋은 실험체를 얻었다는 듯이 피식 웃는 녀석을보며
나도 따라 비웃으며 말했다.
"다른 이의 비명소리를 듣고서도 귀를 막아버리고,
다른 이의 눈물과 피를 보면서도 그저 시선을 피해버리고,
다른 이의 생명을 꺼뜨리면서도 그 입에는 조국의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게 당신이야.
그런 다른 자의 피로 얼룩진 당신도, 그 말을 지껄이는 입도.
전부 더러워. 역겨워."
내 말에 조금 섬뜩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진다.
"..........역시 자네는 재미있어." -소장
소장은 그러더니 이내 더 가까이 다가와선 유리벽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그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한 채, 다시 또 그 더러운 입으로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렇지만, 너도 죽였잖나?" -소장
"다른 이를 죽인 녀석들. 아니. 내 부모를 죽인 녀석들이야.
이미 인간도 아닌 녀석이니 살'인'이 아니라고 말하고서
모든 것을 속여온 건 당신이고."
내 말에 표정이 약간 뒤틀린다.
그러더니 다른 유리상자 안의 혼혈들을 가리키며
다시 뭣도 안되는 변명을 해온다.
"저것들도 괴물이다. 혼혈? 그저 괴물로 보일뿐이잖나." -소장
확실히. 우리와 다른 모습이기는 해.
하지만 그들 중엔 우리와 모습이 완전히 같은 자들도 적잖이 있다.
설령 인간이 아닐지라도, 생명은 생명인데.
당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내가 한심해진다.
"난 말이지......."
고작 그런 것도 모르고서.
오로지 신념이라는 것 만으로 이런 짓을 하는 당신을
그런 당신의 지성을 높게 평가한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
또한,
"내 앞에 있는 너 보다, 저들이 더 인간 같아."
그런 내 앞에 당신이 있다는 것에 더 화가 치민다.
"좋을데로 생각하게나.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두려무나." -소장
그의 한마디가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오른쪽 팔이 시큰한 느낌과 함께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거리는 느낌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것은, 정체불명의 주사.
뭐야 이거. 왜 이래. 특기가 제어가 안돼.
내 감정에 동조하듯이 작은 물방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사라져간다.
두통과 메스꺼움도 강해져갔다. 이거, 약?
"넌 처음부터, 실험용 쥐였던거야." -소장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고,
"기다.....! 윽........"
난 흐려져가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으로 그녀석을 향해 뻗는 내 손을
넋을 놓고 보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아아, 무리야.
'이호 선생님.......모래 오빠....'
힘이 점점 빠지고, 눈이 감겨와.
'구해줘.........'
내가 다시 눈 뜨기 전에, 날 깨우러와줘.
내가 다시 이 끔찍한 풍경과 소리를 느끼기 전에,
완전히. 미쳐버리기 전에 날 깨우러와주세요.
'나 좀.... 깨워줘......'
다시 눈을 떴을 땐, 여느 때 처럼 시덥잖은 일에도 웃을 수 있던 아침으로 돌아와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