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틈을 타 공기중의 물방울로 부숴진 문을 얼린 뒤,
그 여자도 몸의 물을 조종해 이쪽으로 끌어내었다.
어차피 망할대로 망한 인생, 될대로 되라지.

"젠장, 이건 뭐야....!!" -다나

"물이.....!! 이거 그쪽이 그런거에요?!" -귀능

할 수없이 공기중의 물과 물고기 없는 어항의 물을 최대한 끌어모아
두 사람을 가둬놓았다. 숨 정도는 쉴 수 있게,
얼굴주위에는 물이 닿지 않도록.

"이왕이면 특기는 쓰고싶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특기를 쓴 탓일까.
아니면 어제 쓸데없는 걱정으로 잠을 많이 못 잔 탓일까.
예전보다는 섬세한 제어까지는 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으니까.

"특기의 정의를 제대로 아는 모양인데." -다나

"이래서야 움직일 수도 없겠는걸요......." -귀능

"어이, 거기 너! 당장 이거 안 풀어?!" -다나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시니 더 못 풀겠는데요....."

이제 어쩐다. 경찰을 불러야하나?
저 사람들이 경찰이랑 관련된거 아니고?
점장을 정말 믿어도 되는걸까?
앵무새의 말은? 어제의 혼혈은? 그리고 앞으로 난?

'나 보고 어쩌라는건데.......'

이젠 전부 싫다.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누가 좀 알려달라고 애원해보지만 소용없다는 걸 안다.
언제나 내게 가르쳐주던 선생님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오빠와 오르카도.
이젠 내 곁에 아무도 없는데. 대체 누가.

"너, 정말 관련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다나

"관련이라뇨? 그게 무슨......."

관련?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멍하니 있자 판다 혼혈의
남자가 정장의 여자에게 말했다.

"저 아가씨, 모르는 것 같은데요." -귀능

"하긴. 이 정도 특기였다면 진작에 우리를 처음부터 제압했겠지." -다나

둘이서 뭐라고 속닥거리다가 나를 스윽 본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나쁜 집단에 속한 자들은 아냐.
만약 그랬다면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둘 다 나섰겠지.
처음에는 한 명만 나를 떠보려고 했던 걸 봐서는.....

"저기. 당신들, 대체 누구에요?"

"음?" -다나

"아무리 봐도 나쁜 목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죠
거기 꽃무늬 와이셔츠 언니."

"서장님이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구....." -귀능

"자꾸 말 끊을래?" -다나

나는 우선 특기를 풀어 그 둘을 내려주었다.
물에 젖어서 불쾌한건지 혀를 쯧하고 차는 여자.
나는 바로 옷을 특기로 말려주었다.

"그나저나 서장이라니..... 진짜 경찰이었어요....?"

"뭐냐 그 반응은?" -다나

"전혀 경찰 안 같죠? 조폭에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그런 집단은 아니랍니다." -귀능

"누구더러 조폭이래 이게." -다나

"아파요......!" -귀능

아프겠다. 딱밤소리가 딱이 아니라 쿵이었어.
내가 괜찮냐고 묻자 괜찮다며 헤실헤실 웃는다.
이내 끊겼던 대화를, 판다 혼혈의 남자가 이어나갔다.

"저희는 히어로 기관, '스푼' 입니다." -귀능

".......스푼?"

나는 그 말에 스푼이 뭐였는지 생각하다가 특기와 연관지어
생각하다보니 떠올라서 눈을 번쩍떴다.
그러고보니 나도 처음엔 여기가서 도움을 달라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었지.

"히어로가, 여긴 무슨 일이죠?"

"시찰이다." -다나

"시찰......? 뭘 시찰하러?"

"그게 사실은........" -귀능

판다 혼혈의 남자는 목을 다시 긁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나는 혼혈이나 실험에 관련된 얘기만 들어도 눈 주위와
손목을 긁어대는데. 부작용으로인해 특기를 쓸 때면
색이 바뀌는 눈과, 수갑이 채워져있던 손목을.
남자가 말하기 힘들어하자, 이내 여자가 말했다.

"아직까지도 불법으로, 펫숍에서 혼혈을 사고파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이라는 정보를 들어서 말이지." -다나

그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보아하니 몰랐던 모양인데..... 아무튼 너는 그것에 대해선
관계가 없는 것 같으니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 -다나

혼혈을 사고 팔아?
어제의 울던 혼혈. 수상한 점장의 행동.
게다가 아까 앵무새의 말까지. 이제야 정리가 된다.
그리고 팔린 혼혈들은 또.... 어쩌면 그 때처럼......

"그러니까 얼른 여기서 나가는게........" -다나

나가라고? 도망치라고?
또 다시 나 같은 피해자를 만들라고?
나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만 편하게 살고싶지 않아.
적어도 저 안에 있을 점장 녀석을 죽을만큼 패야지
이 화가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다.

이제, 알겠다.

"..........아가씨?" -귀능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돼.
나는 그냥 나니까. 내 결정을 스스로 따르면 되는거다.

그래,

"어이, 이봐! 너 지금 뭐하는......!!" -다나

"얼린 문을 맨손으로......?!" -귀능

그러면, 되는거다.
망했네. 그것도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