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려 죽겠는데 왜 안 오는거야......."

이 놈의 점장은 시간이 몇 신데 오지도 않고 뭐하는거야.
손님 만나러 간다해놓고서 몇 시간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점장이 와야 나도 문 닫고 집에 가서 좀 쉬지.

'받아주는 데가 여기 밖에 없으니 사표쓸 수도 없고....'

그렇게 혼자서 궁시렁거리다가 심심하기도 해서
특기로 물을 다루는 것을 연습했다.
정교하게 제어하는데에는 익숙해졌다.
다른 복사한 특기들도 원래 특기처럼 익숙해진지 오래.
정작 쓸 데가 없다는게 문제지만.

"음?"

그 때, 유리창 너머. 아니 더 멀리 보이는 점장님과
몇몇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당황해서 가지고 놀던 물방울을 빠르게 공기 중으로
퍼지게 한 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웃어보였다.
특기는 비밀이니까.

"아, 점장님!"

"어라? (-) 자네, 아직도 있었어?" -점장

네 녀석이 늦게 와서 그렇지 이 빌어먹을 자식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전부 손님인가? 인간에 혼혈에..... 다 섞여있네.

"이제 오셨어요?"

"아아, 그래. 전부 손님이다.
내가 왔으니 너는 이만 가봐도 좋아." -점장

그 말에 신이 나서 나는 앞치마를 벗었다.
문을 잠글 준비를 하려하자 됬다고 말하며
안쪽의 문을 여는 점장이다.
가끔씩 점장이 들어가긴 하는데, 혹시 비상금이라도 숨겨놨나
싶어 물어봤다가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어
그 뒤로는 손도 댄적이 없다. 뭣보다 손대면 경보음이 울리는 구조고.

"어? 그 손님, 혹시 두루미혼혈이에요?"

"이 여자? 그런데." -점장

손님들 사이에 끼어있는 백색에 붉은 머리카락이
부분적으로 나있는 여자 한 명.
아무래도 두루미 혼혈인 듯 싶다. 예쁘게 생겼네.

"오늘 손님 중엔 까마귀 혼혈도 있었는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혼혈

혼혈 여자가 말하려하자 점장님이 내 앞으로 와서
그 여자와 내 사이에 파고들었다.
내가 뭐냐고 묻기도 전에, 점장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 -점장

"이건 뭐에요?"

점장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봉투.
이거 설마.... 아니 좀 얇긴 하지만 설마....

"보너스다. 얼마 되진 않지만....." -점장

"가....감사합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구나.
나는 신나서 집에 가려고 문을 열었다.
얼마나 들어있을까 싶어 봉투를 열어보자,
내 예상과는 다르게 초록배춧잎다발이 아닌 하얀 종이.
수표도 아닌 그냥 하얀 종이가 들어있었다.
얼래? 이거 편지같은데?

"점장님, 이거 돈이 아닌....."

나는 나가기 직전 빠르게 뒤로 돌아 점장을 불렀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아까의 억지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서럽게.
하지만 애써 소리는 내지 않으며 우는 혼혈의 여자.
다른 혼혈 몇몇들도 괴로운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아? 아, 바뀌었나보구만. 금방 주도록 하지." -점장

"점장님."

"또 뭐냐." -점장

이상해. 어떤 손님이길래 저렇게 우는 거야.
웬만하면 나와 관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이건, 의심이 아냐. 호기심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대체 어떤 손님이시죠? 고민상담이라도 하러오신게
아니면 저렇게 슬퍼하....."

내가 묻자 점장은 내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신경질적으로
낚아채고서 내 손에 원래 주려던 봉투를 쥐어준 뒤
내 등을 떠밀었다.

"알 거없어. 내일 지각하지나 말라고." -점장

이상하다는 것 쯤은. 당신이 뭔가를 숨긴다는 것 쯤은 나도 잘 안다.
몇 번이고 속고 속아서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던 나다.
너보다 몇 백배는 싫은 인간을 죽이고 싶어 모든 것을 놓아버린 나다.
지금 당장이라도, 너희를 밀치고 저들에게 묻고싶다.
왜 그리 슬피 우냐고.

왜 그 시절의 나와 같은 눈물을 짓냐고.

"그렇지만...."

"짤리고 싶어?!" -점장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의 벽은 높다.
여기서 무작정 내가 돌파한다고해서 해결되지 않아.
증거도 불충분하고, 이건 단지 나의 추측일뿐이다.
아니.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확신에 가깝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이들을 그리 오래 잡아두진 못해.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창피하지만
나에게 오는 피해가 조금은 두려웠다.

'어떻게 쌓아왔는데 포기할 수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이 평범한 삶이 조금은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몇 번이고 무너뜨리다가 이제서야 혼자서 성을 쌓았는데.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쉬운게 아냐.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내일은 제대로 하라고." -점장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을 가만히 둘 생각도 없다.

"이깟 푼돈이 뭐라고......."

가게에서 나온 뒤, 봉투를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 뜬 달은 밝은데, 그 아래에서 우리는
이깟 것들이 뭐라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건지.

"쓸데없이 달만 밝아가지고......."

아아,

밤하늘 참 드럽게 맑네.
더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