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뭐가 이리 많아......"
꽤나 이른 아침. 한껏 높이 쌓아올린 서류더미를 안아들고서
정원을 가로질러 연구소로 향하는 하얀 가운을 입고서
하늘색 머리카락과 짙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나는,
다른 연구원들에 비해 어린데도 불구하고 다 작성하고 정리한
서류를 들고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으앗?!"
모퉁이를 돌던 그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에 의해
급하게 멈추느라 뒷걸음질쳤고 이내 서서히 몸이 뒤로 기울었다.
사람이 있으니 특기로 물 입자로 다시 몸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
나는 그렇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조심해야지, (-)." -이호
"놀래라...... 괜찮아?" -백모래
눈을 떠보니 선생님이 뒤에서 나를 받았고, 아까 튀어나온 건
아무래도 모래 오빠였던 듯 하다. 오빠가 서류를 빠르게
받아들긴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서류가 꽤......으음.
할 수 없지. 줍는 수 밖에.
"대체 이게 무슨......" -이호
"아, 선생님. 죄송해요. 금방 주울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혹시 너 혼자 다 했어?" -이호
"뭔 문제라도 있어요? 실수 안 하려고 몇 번이고 검토했는데?"
백모래 오빠와 이호 선생님이 몇 번 서류를 훑어보시더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오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씩 수정할 곳이 있긴 하지만 딱히 수정하지 않아도
될 것같고.... 하루만에 이걸 다....." -백모래
"뭣보다 누구처럼 오타는 안 나지. 안 그러냐?" -이호
"서....선배....!!" -백모래
이호 선생님은 키득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따라 웃자 오빠는 한숨을 내쉬었고, 서류를 보관함에
가져다놓은 뒤 다른 사람들이 있을 휴게실로 향했다.
"선배랑 모래에 (-)까지.... 뭐하느라 늦었어요?" -연구원1
"죄송해요 제가 서류를 좀 떨어뜨려서.....헤헤."
"괜찮아. 저 바보 때문에 가뜩이나 피곤한데 더 피곤하겠다 싶어서." -연구원2
"왜 나만.....하아......" -백모래
오빠의 한숨소리에 모두의 웃음소리가 겹친다.
그렇게 차도 마시고 한숨 돌리던 그 때,
"다들 여기 있었구만 그래." -소장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의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 말조차도 흘려들었지만.
"다들 일은 끝낸건가? 월급 도적들." -소장
"다 끝냈으니 걱정마시죠 도적왕."
"하하, 자신만만하구만 (-)." -소장
남들과 열 살 남짓 나이차가 나도, 악착같이 공부하고
더욱 열심히 일한 것도 저 인간 때문이다.
저 표정과 목소리와 웃음소리. 전부 거슬려.
조금이라도 저 인간한테 빈틈보이고 싶지 않다.
"그걸 다했단 말이지......" -소장
소장이 말없이 다른 연구원 선배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아마 일을 다 못한 거겠지. 애초에 하루만에 다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나야 뭐 아예 밤을 꼴딱 샜지..... 티 안내려고 하니 더 피곤하다.
"제가 어려서 잘 못해서 선배들이 절 도와주느라 그런겁니다.
오늘 안에 끝내도 되는 걸로 압니다만 도적왕-"
내 말에 소장은 질책하려던 것이 아니었다며 껄껄 웃고는
나에게 조금 있다 식사 뒤 잠시 자신에게 오라 말했다.
누가 가고싶을 것 같냐. 나는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덕분에 살았다.....고마워, (-)." -연구원2
"아니에요. 애초에 그걸 어떻게 하루만에 다하라는건지....."
"넌 했잖냐, 임마." -이호
"전 선생님 조수일하니까 시간이 더 많아서 그런거죠.
애초에 난 연구 일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10대 청소년 노동착취를 하면 어쩌자는....."
"그만, 그만.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자아-" -백모래
오빠는 내 등을 떠밀었고, 다른 선배들과 이호 선생님도 식당으로 향했다.
「맞다, (-). 특기라는 걸 알고있니?」 -소장
「.........그런 거, 모릅니다.」'........아직도.'
그 날로부터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비록 나는 아직 어리지만, 적어도 어른이 되어버린 오빠와
다른 선배들 몫만큼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제는 예전에 말도 없고 공격적이던 나 자신조차 잊은 듯 하다.
하지만 그 영감이 몇 년전 지껄인 그 말이,
또 다시 오늘도. 마음에 걸린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