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아."
거기서 왜 뛰쳐나온거야. 한심하게.
나 자신 스스로도 한심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아원의 뒷뜰의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장소.
나는 담에 기대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었다
'물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머리색을 보면 보통 하늘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물.
그리고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과거의 목소리.
「저리가」
「다가오지 마」
「저리가 괴물」고개를 도리질치며 머리를 비워보려 해도,
과거의 목소리와 함께 아까 나를 보던 선생님의 표정이 기억나버린다.
본의아니게 걱정을 끼쳐버렸다는 생각에 울적해진다.
"아니 그래도, 난데없이 친구를 사귀라니.... 대체 누굴....."
그 순간 뇌리에 스치는 이호 선생님이 했던 말.
「너 다쳤을 때 말해준 사람?
백모래라고, 너 다쳤을 때 제일 먼저 뛰어온
온통 하얀 남자애다.」대체 그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걸까.
다른 애들은 전부 무섭다는 듯, 피투성이가 된 내가 징그럽다는 듯
도망치거나 벌벌 떨거나 주저앉아 버리던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이가 나보다 많아서 그런건가?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누가, 왔나?"
그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가 오는 걸까. 이호 선생님? 아냐.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리가 작을리가 없어.
그냥 지나가는 작은 동물 쯤 되겠거니 해서 나는 다시 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점점 잠이 온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해서.
내 손에 들린 칼과 피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해서.
이따금씩 잠을 이루질 못했더니 피곤하다.
'그래도.......'
선생님과 있을 때 만큼은 괜찮았었는데.
'그랬는데.......'
이젠, 미움받아버린 걸지도. 나.
"(-)?" -???
아까의 발소리의 주인이 아무래도 동물이 아닌 듯 하다.
선생님이 아닌, 소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감고있던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을 가린 누군가가
그 눈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있었다.
"여기서 뭐해?" -백모래
온통 새하얀. 새하얗고 새하얀 녀석이었다.
눈은 토파즈빛으로 빛나고 미소에는 희망이 담겨있다.
나와는 정반대. 순간 선생님이 말한 녀석이 이 녀석이라는 것을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와 나이차가 꽤 나보인다.
"..........비켜."
"여기서 있다가 감기걸려. 이호 선생님이 너 찾으시더라." -백모래
"..........안 보이니까, 비켜."
내가 거듭 말하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린다.
싫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저렇게 착한 척 하는 사람이.
같은 머리색이지만 이호 선생님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색해. 무엇보다 쓸데없이 하얘서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하늘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 짓는 저 미소가 가장 싫다.
부러움? 질투? 그런 말도 안되는 유치한 감정이 아니다.
저 뒤에 숨어있을 진짜 얼굴이 두려운거다, 나는.
설령 저 미소가 진짜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다.
왜 쓸데없이. 왜. 대체 왜.
"하늘만 보지 말고, 가서 너도 같이 놀자." -백모래
"나이 많다고 오빠 노릇하지마. 속까지 어리지 않아."
"적어도 선생님 걱정은 덜어드려야,
속까지 어리지 않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백모래
왜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어.
"자, 가자." -백모래
내게 손을 내밀지 마.
"어서." -백모래
언제나 그랬단 말야.
언제나, 내가 가장 절망했던 때는
"(-), 나 먼저 가버린다?" -백모래
내 기대로 인해, 현실이 일순간 무너질 때.
"먼저 가던지. 안 갈 거니까."
그러니 기대따위 처음부터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에 백모래라는 소년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백모래
그리고는 이내 등을 돌려 온 길로 되돌아간다.
역시 너도 똑같다. 어른 들도, 사람도 다 똑같다.
어느순간 지쳐서는 멈춰버리고말지.
차라리 잘됐어, 먼저 떨어져나갔잖아.
괜찮아. 괜찮다. 아쉬움따위.......
그런데 왜 나는 바보같이.
"..........이 바보가."
또 다시 울어버리고 마는 걸까.
이호선생님이 말한 특기라는 것으로 눈물을 멈추어도,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대체 뭣 때문에?
부모님께 사랑받은게 너무 적어서 아쉬워?
아니. 오히려 너무 많아서 감사하다.
사람을 죽인 걸 후회해?
아니. 복수했으니 상관없다.
또 다시 같은 짓을.
「저리가 괴물」또 다시 다른 이를 도망치게 만들어서도, 아니다.
아냐. 그런 것 따위 알 바 아닌데.....
"......나 참." -백모래
분명
"신경쓰지 말라고 해놓고서 그러면 더 신경쓰이잖아." -백모래
그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