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내가 이 궁의 시녀가 된 이후, 다른 시녀들에게 욕도 들어보고 맞아 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백웅님과 백련님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고 잠시나마 보호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 진짜 그 여우년 짜쯩나지 않아요?"

"정말, 옛날에는 백웅님이랑 백련님한테 붙어먹더니 이번에는 홍염님이랑 홍명님한테 붙어먹잖아. 아, 홍패님도.

이 정도면 거의 기생충 수준 아니야?"

"뭐가 그리 잘나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깔깔깔"



네 명의 하녀들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깔깔 웃으며 나를 깎아내리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작 그 대화를 듣자면 머리가 띵하고 아파온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게 많은걸까...


"아, 요즘은 신드리아의 신드바드 왕한테도 꼬리 치고 있는 거 알아요?"

"어머 정말? 자기가 무슨 만인의 여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거의 공주병 수준 아닌가요? 깔깔깔"

"맞아, 맞아!!"



나 때문에 저런 불미스러운 대화에 신드바드님이랑 다른 분들의 존함이 언급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다.

내가 멍하기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녀들의 이야기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홍염님이랑 같이 있던데 혹시..."

"에? 나는 신드바드 왕이랑 엄청 다정하게 이야기하는걸 봤는데..."

"의외로 홍명님이랑 이거일지도 몰라요!"

"전 개인적으로 백룡님 같은데... 둘이 분위기가 엄청 심상치 않더라고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가 파르르 떨리다 못해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당장 가서 뺨을 때리든 하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옷 소매로 거칠게 문질러 닦고 나는 하녀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깔깔깔!! 진짜 그런 거면 이제 쓰레기잖아요!"

"평민이 시녀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였어. 정말 그런 년이 시녀 같은 게 되었을까? "



내가 자신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목소리를 높여 깔깔 웃고 있다.

모퉁이만 돌면 하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어디 한번 그 잘난 얼굴 좀 보자...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는 거야?"

"우리도 좀 끼워주지?"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 홍패님과 신관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바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호, 홍패님!..."

"얼른 말 해봐, 누구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고 있어?"

"그... 그것이..."

"자기들 끼리 서는 좋아라. 깔깔거리더니 우리가 있으면 말도 못 하는 거야? 거참, 웃긴 녀석들이네."


두 분은 평소처럼 장난기가 가득 느껴지는 말투셨지만 약간의 날이 서 있었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어 조용히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두 분이 가시면 그때에는 내가 전부 끝내야지...


"너희가 ○○에 대해서 뭐라 떠들든 별로 상관없어, 그렇다고 해도 염형이나 명형을 들먹이는 건 용서 못 해."

"저, 저희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

"그렇다면 뭐, 그저 ○○가 마음에 들지 않아 너희들 생각을 짜집기 해서 나불나불 떠들었다는 거잖아. 안 그래?"


홍패님의 말씀에 하녀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침묵을 유지했다.


"잘 새겨들어... 아니다. 어차피 너희는 오늘부로 모가지니까.

얼른 꺼져라."


"ㄴ, 네?!"

"반복하기 귀찮다. 얼른 꺼져."


홍패님은 기분이 안 좋으신 듯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고 벌벌 떨리는 하녀들의 목소리가 멀어짐과 함께 벽 너머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갑자기 급히 끌고 오길래 뭔가 했더니 이딴 일 때문이냐?"

"에이- 쥬다르도 시끄럽다고 짜증 냈었잖아~

○○~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이제 슬슬 나오지그래?"



홍패님은 벽 너머에 내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신 듯 내 이름을 부르셨고 나는 슬그머니 홍패님과 신관님이 계신 곳으로 발을 옮겼다.


"뭐야 너, 우냐?"

"안 울어요..."


신관님의 말씀에 나는 급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지만, 홍패님의 행동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문, 우리는 믿지 않으니까."


내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홍패님의 부드러운 손길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1.내 뒷담화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