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심심하다."

아까 카무이 말대로 진짜 식후운동으로 대련할 걸 그랬나.
나는 심심해서 내 검을 뽑았다. 그리고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검의 칼날을 닦았다. 자주 닦아놔야 깨끗하지. 응.
누가 남겨준 검인데.

"음?"

그 때,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어보니 여자다. 굽있는 신발.
이내 내가 있는 방 앞에서 딱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문이 드르륵거리는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카무이 공. 지금......" -츠쿠요

"츠쿠요 씨?"

츠쿠요 씨였다. 츠쿠요 씨도 나를 보고는 적잖이 놀란 듯 했다.
나도 뻘쭘해져서 한동안 굳어있다가 검을 검집에 넣고서
가볍게 인사를 하며 일어났다.

"카무이라면 지금 없는데......"

"네가 왜 여기있는 거냐." -츠쿠요

"설명하자면 길어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묻자 츠쿠요 씨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그녀는 이내 말했다.

"사실 야왕 호센이 없어진 뒤 백화 단원 중 몇몇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찾아간 자들도 적잖이 있다.
그래서 순찰 만으로도 인력이 모자라서 지금 진상손님
한명이 여기 있는데 우선 불편하시다면 방을 옮기라고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츠쿠요

"츠쿠요 씨는요?"

"지금 당장 가봐야할 일이 생겼어. 신센구미라는 자들과
너희 해결사 녀석들이 날 찾더군. 네 얘기도 좀 하던데." -츠쿠요

나는 그 순간 뜨끔했다. 이대로 츠쿠요 씨와 같이 가자니
카무이의 보복이 두렵고 그렇다고 안 가자니....으음.
그래. 귀찮지만 할 수 없지.

"그럼 제가 가볼게요. 무력 제압도 되나요?"

"아아, 어느 정도 상황을 보고 상관없다고 생각되면.
그럼 부탁하지." -츠쿠요

"네. 긴토키한테는 12시 전에는 간다고 전해주세요."

츠쿠요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바로 가버렸다.
귀찮지만 나중에 더 귀찮아지는 것 보다는 낫겠지.
나는 그렇게 방금 닦은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차고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 위에 손가락에 살짝 상처를 내어 피를 내어
검은색으로 메모를 남긴 뒤 방을 나섰다.

"벌써 아물었네."

이 정도 상처쯤이야. 근데 아예 절단되거나 하면 회복은 안되겠지.
예전에 타이치도 팔을 잘렸지만 회복은......
그 사람 생각은 그만. 그만하자.

"으앗.....!"

저쪽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와 쨍그랑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녀들이 꺅꺅거리는 소리도 함께. 백화는 없구나 아까 말대로.
나는 바로 그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츠쿠요 씨 부탁으로 왔습니다만."

"저기 저 남자 때문에....." -유녀1

유녀의 손 끝에는 술에 취해 꽐라가 된 천인이 있었다.
아. 그래서 유녀들이 못 말렸구나.
천인을 함부로 못 대하기도 하고 힘이 인간보다 쎄니까.
나는 우선 유녀들을 물러나게 했다.

"손님."

"아앙?! 넌 뭐야!! 인간 계집 주제에!!" -천인1

"저도 천인이니까 서로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이......" -천인1

나는 그대로 빠르게 그 남자의 다리를 걸어 중심을 잃게 한 뒤
빠르게 뒤로 가 팔을 봉쇄하고서 그대로 바닥에 깔아뭉겠다.
몰라 걍 무력으로 나갈래 이런 망종 따위.

"누가 미친년이라고 이 망종아?"

"크윽..... 뭐...뭐야 이 년은.....!" -천인1

뭐긴 뭐야 너보다 몇 배는 쎈 용병부족이지.

"자, 자, 술 마셨으면 그냥 쳐주무세요."

나는 너무 세게 하다간 이 자의 팔이 빠질 것 같아
한 팔은 놓아주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빌어먹을.....!!" -천인1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시큰한 감각이 돌았고
코끝에는 알싸함이 맴돌았다.
눈앞으로 흘러내리는 검은색의 피. 유녀들의 비명소리.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포화해 메아리 치고 나는 놀라서
힘조절도 못하고 그대로 그 남자를 너무 세게 쳐서
반대쪽 벽에다 박아버렸다. 그 자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사고쳤다, 나.

"쿨럭........."

"괘....괜찮으세요?!" -유녀1

상처가 문제가 아니다. 술을 뒤집어 쓰니 힘이 빠진다.
게다가 이 술, 꽤나 독해. 어쩌지. 이대로 있다가는....
안되겠어. 머리가 아파. 정신이 희미해진다.

"............찾았다." -카무이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나를 받은 뒤 안아들었다.
익숙한 체향과 목소리. 뛰어온 듯한 조금 거친 숨소리.

"아부토." -카무이

"아아, 알겠어. 뒷처리는 나보고 하라 이거지?
얼른 아가씨 데리고 가." -아부토

그렇게 카무이가 자리를 뜨려는 그 순간,

"근데 말이지," -아부토

아부토 씨가 말을 걸어 카무이는 잠깐 멈추었다.

".......뭐, 알고 있겠지." -아부토

"알아. 거기로 가는 수 밖에." -카무이

둘끼리 의미를 모르겠는 말을 주고 받길래 내가 물어보자
카무이는 나보고 아무 걱정말고 좀 자두라고 말했다.

.....해피 화이트데이는 개뿔.


아아, 최악이야.

.......뭐랄까, 순식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