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그의 방의 천장.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혈향.
아, 그렇지. 그랬었지. 나 분명..... 그리고 카무이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카무이는 날 습격했던
녀석을 가차없이 죽였다. 아니, 가차없다기 보다는
오히려 죽는게 나을 만큼 너무나 잔인하게 짓이겼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어디까지나. 카무이는 카무이니까.
"......카무이."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
내가 부르자 그제서야 살기를 누르고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카무이다.
검은색 바탕의 치파오라 그런지 별로 티도 나지않았다.
"카무이."
".........만지지마. 지금 꽤나 더럽거든." -카무이
"넌 더럽지 않아."
내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카무이다.
그렇지만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싫어. 싫다고.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서, 어딜 가겠다는 거야.
"........알고 있어......." -카무이
브는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푹 숙인채 읊조렸다.
꽉 쥔 두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알고있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만. 더 비참해질 뿐이니까...." -카무이
웃기지마. 뭘 알고 있다는 거야, 대체.
저 말의 의미는 그가 따라오지 말라고 내게 전하는 것.
분명 위험한 길일 것이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고.
카무이의 저 푸른 눈이, 오늘따라 슬퍼보인다.
"그럼 가. 실망할거면 하고, 뭐라고 화낼거면 화내고." -카무이
내 말에 뭣도 안되는 미소를 짓는다.
동시에 안쓰러운 눈으로 날 보고있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고개를 들었다.
짓이기던 아랫입술의 고통도, 이젠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손을 잡으려 뻗자 피가 묻었다며 피하는 그의 손을
나는 다시 잡았다. 손에 물드는 피. 그리고 이 혈향.
"......제멋대로인것도 정도가 있어, 카무이."
"놔." -카무이
"그 날의 약속을, 잊었을 것 같아 내가?"
그래. 그 날. 납빛으로 하늘이 드리웠던 그 날, 나는 동료들의
시체 위에서 그저 지나가버린 것들을 붙잡고서 하늘만 보고있었다.
왜? 왜 이런 어두운 곳에 나 혼자 있어야해?
누구라도 좋으니까 알려줘.
더 이상 혼자는 싫어. 혼자가 되는 것은 싫어.
그렇게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서 울던 내 귀에, 나지막한 음성이 와닿았다.
그 목소리와 말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을 붙잡고서
멍하니 하늘을 본다고 해서,
그것들이 돌아오진 않아.」
그 목소리에 어쩌면 나는, 끝까지 검을 쥐었던 걸지도 몰라.
그런데 왜. 왜 대체 그런 모습으로 있는거야.
왜 하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있는건데.
내가 알고있는, 평소의 너로 돌아와. 제발.
"그 때의 약속을 이때까지 간직해왔던 너처럼,"
나는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떨구고서 울음을 애써 참았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던 거야? 약속을 지키려던거야?
아냐. 아니다. 너는 바보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지금의 너는 자기 마음대로 할 뿐이다.
아픔을 삼키기보다는 다른이에게 옮겨 해소하고,
지키기 보다는 지켜지는 것들을 스스로 부순다.
그런 주제에, 나의 따스한 대답을 원한다면.
너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 정도로 내가 널, 놓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렇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나도 너와 같았으니까.
바닥에 원 두어개를 그리는 내 눈물.
그 고개를 다시 들고서 그를 향해 소리친다.
"더 이상 혼자가 되지 마."
눈물로 범벅진 내 얼굴은, 분명 못나보이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울어서, 네가 울지 않게 된다면 상관없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넌, 언제나 그랬으니까.
혼자서 눈물을 삼키고서 바보같이 웃었으니까.
지금조차도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덕분이었는데.
정작 그는, 남을 웃게 만들면서 자신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
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거봐. 조금은 속을 내비춰도, 조금은 의지해도 될텐데.
너는 또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피식 웃어버린다.
그 말에 안심하는 나는, 또 얼마나 바보인걸까.
나는 그에게 두 팔을 벌리며 웃어보였고 그는 아무말없이 나를
꽈악 껴안았다. 조금 아프다. 그만큼 세게 안고있다는 뜻이겠지.
"(-)........" -카무이
"읏........."
"미안..... 아파?" -카무이
넌 언제나 날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짓지만,
그거 알아?
그 미소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너의 그림자를 쫓아 가다보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렇게 그 끝에 다다르면 태양에 닿기라도 하는걸까.
처음에는 두려웠다.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내가 알지 못하는 너의 진짜 모습이.
"별로. 대신 이런 어리광은, 오늘뿐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가 피에 젖은 그 손을 볼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젠 아무런 상관없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 간에,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지금의 너니까.
지금은 그저, 숨을 죽이고서 모든 것을 안는다.
너의 미소부터 피에 젖은 손의 온기까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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