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큭.......! 잠깐만요...!" -소고
짜증이 나서 힘이 제어가 안되는 건지
공격을 받아주기만 하려다가 어느순간 마구 공격하고 있었다.
심장이 마구 끓어오르는 느낌.
더욱 더 무언가를 베고 싶어지는 느낌.
검은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느낌을, 잘 알고 있다.
어렸을 적. 돌연변이로서 그저 무기가 되어 다른 이를 죽였을 때의,
그리고 타이치의 한 쪽 눈을 도려냈을 때의 그 느낌-
"누님, 이건 좀 너무한데요?" -소고
그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공격해대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듯 했다.
지금의 나는, 그 소리도 들리지가 않아.
그저 조금 찡그린 듯한 무표정을 짓고서 계속 목검을 휘두를 뿐.
심장이 조여오는 듯 하다.
검은피도 본능에 따라 마구 끓어오른다.
싸울 때마다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언제나 옆에서 진정시켜주던 누군가.
그 누군가로부터 입은 상처에 더욱 그런거겠지.
".......님....." -소고
검을 맞댄 채 끼긱거리는 소리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듯 했다.
동공이 열린 채로 검을 내려쳐 소고의 목검을 누르고 있는
나를 소고가 불러댔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지않았다는 표현이 맞겠지.
"...님......! 누님!" -소고
그제서야 나는 흠칫하면서 검을 거두었다.
소고는 꽤나 지쳐보였다. 아무리 어려도 명색이 신센구미 최강인데.
그를 그 정도로 몰아붙여 놓은 걸 보니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내가 꽤나 많이 흥분한 듯 했다.
.....바보같이. 감정조절 하나 못하고.
"어...어! 미....미안미안,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나는 웃다가 손에서 목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소고가 괜찮냐며 가까이 오며 손을 뻗었다.
순간, 검붉게 물든 어린 날의 내게 손을 뻗었던
타이치가 생각나서.
나를 암살의 수단으로, 무기로 감정없이 흐던 그 손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소고의 손을 쳐내어버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누님?" -소고
"아무것도....아냐."
화가 나서. 이상하게 몸이 제어가 안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닌 희열의 떨림.
용병부족의 본성, 검은피의 본성이 마구 들끓는다.
가끔 소고랑 대련해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분노라는 감정이 아무래도 방아쇠인 듯 했다.
이래서 감정조절이 중요하다니까. 특히 돌연변이인 나는.
"아으, 열 받아!!"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애꿎은 목검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너무나도 끝내주게
그 목검은 지나가던 히지카타의 머리를 빠악 소리가 나도록 쳤다.
.......어라 이게 아닌데.
"오- 명중이네요-" -소고
나는 헉- 하고 짧게 말하고서 그대로 툇마루에 잠시 세워둔
내 검을 쥐고서 그대로 담을 넘어 튀었다.
히지카타는 어느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거기서, (-)!" -히지카타
히지카타가 다시 둔영의 정문으로 나를 쫓아가고 난 뒤.
사실 간 척하면서 담 뒤쪽 처마에 매달려있던 나는 다시 들어왔다.
"휴우.....하여간 저 녀석 속이긴 쉽다니깐."
"나이스, (-) 누님." -소고
나는 겉으로는 웃으며 소고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이상하게 아까 일 때문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다시 쿠로족의 본능이 들끓었다.
카구라가 야토족의 본능을 억누르는 것 처럼,
나도 그렇게 계속 억눌러왔다.
예전에 타이치를 만났을 때 조금 위험했지만,
그런데 지금, 갑자기 이런다.
'진짜........'
언제나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도
누군가가 옆에서 그 끈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그 존재로 인한 상처가 생겨버렸으니.
'........긴토키 바보.'
그와 싸우고 난 뒤 이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싸웠을 땐 그저 그랬는데,
지금은 소중함이라는 이름의 일련의 기대가 되어 심장에 박혀있다가
일순간 창으로 변해 박혀든다.
이러려던 건 아닌데- 라는 걸 알면서도
이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본심과는 다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무섭네. 감정이란 건."
"뭐가요?" -소고
나는 순간 어쩌면 타이치의 말대로
감정이란 짐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 싸운 것 정도로, 화낸 것 정도로 이 심장이 조여온다.
마구 뛴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그냥 혼잣말이야. 그럼 난 이만 간다."
그대로 다시 뛰어올라 담 위에 서선 인사를 하는 나에게
소고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어디 가시려구요? 갈 곳도 없으면서." -소고
"몰라. 이번엔 어떻게는 그 녀석이
먼저 자존심 접도록 만들어 주겠어!"
나는 조금은 들끓어 오르는 피를 진정시킨 뒤
다시 시원하게 씨익 웃었다.
"그럼 나중에 또 놀자, 소고" -소고
담 아래로 사라진 뒤,
뒤늦게 히지카타가 쫓아와서 헉헉거리며 거기서라고 고함쳤고,
소고는 그런 히지카타와 태양이 뜬 맑은 하늘을 번갈아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나도 조금은, 웃었던 것 같다.
후회와 함께 짜증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