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또 다시 잿빛으로 드리우고,
그 위에선 하늘의 빛과는 정반대의 빛을 띤 하얀 눈이 내려왔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따귀를 때리듯 날카롭게
옆을 비켜지나가는 겨울.
모든 것이 하얗게 뒤덮인 그 풍경에 녹아든 채 길을 걷는 한 사람.
"하아..........." -긴토키
유카타를 입은 채 눈과 너무나 잘맞는 은발을 띤 내가
한숨을 내쉬자 뿌연 김이 되어 사라져갔다.
어떻게든 도시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걸었지만,
아직까진 숲밖에 보이질 않는다. 나는 툴툴거리며 지도를 꺼내 폈다.
"뭔 말이여 이게......." -긴토키
그래봤자 알리가 없다.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데, 어쩌라고!
나는 머리를 마구 헝끌어뜨리며 짜증을 마구 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길이나 좀 알아둘 걸.
하지만 후회해봐도 현실은 시궁창이다.
날은 점점 추워져만 갔다.
이 정도 추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걷던 나였지만
외투 하나없이 유카타만 입은 채 있으니
이가 덜덜 떨리며 마구 부딪혔다.
'근처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긴토키
추위로 새빨개진 손을 입김으로
녹이다가 그치지 않는 눈에 하늘을 올려다보본다.
지나온 발자국마저 하늘에서 내려온 눈에 다시금 하얗게 지워져갔다.
이대로 모든 흔적이 사라지면, 그 때는 편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꿈꿔보지만, 그마저도 무리라는 걸 잘 안다.
'어느샌가. 또 다른 걸 짊어질텐데.' -긴토키
백야차라는 이름의 무게를 내려놓은 지 몇 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의 흔적은
지나온 발자국이 눈에 지워지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러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다시 시작한다해도 언제는 끝이 있을거란 것쯤은 나도 잘 알고있다.
"뭐, 우선 가볼까." -긴토키
하지만 끝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렇게 애써 생각을 돌리며
먼산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눈위에 남는 발자국들.
한 걸음. 귀신으로 찍혀있는 어린 날의 자신.
또 한 걸음. 야차로서 마구 베어나가는 자신.
그리고 또 한 걸음. 앞으로 그 발자국에 무엇이 찍힐지 모른채 나는 걸었다.
적어도, 핏빛 발자국만은 아니길. 그렇게 빌며 다시 내리는 눈에
지워져버린 발자국에서 시선을 떼었다.
"..............." -긴토키
하지만 얼마안가 그 걸음이 멈추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어딘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사람인가? 라는 생각에 안도한 나였지만
이내 표정이 꽤나 험상궂게 변했다.
그리고는 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아, 정말 싫다.' -긴토키
바람에 실려온 피비린내는 하얀색에 녹아들어선
나의 본능을 자극하고.
그 발길이 닿은 곳에 있는 것은 마을이라 하기도 뭣할 정도로
작은 집이 다섯채정도 모여있는 촌락. 그리고 무기를 든 천인들.
더러운 자식들. 그렇게 처리했는데도 잔당이 남아있었던 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이젠 그렇지만도 않았다.
불에 타들어가는 촌락과, 사람의, 시체의 피비린내.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천인들의 이질적인 모습에 올라오는 것은,
"아? 뭐야. 사무라이인가?" -천인1
"...........쳐......."
"응?" -천인1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역겨움-
"닥치라고 이 더러운 자식들아-!!" -긴토키
올라오는 역겨운 그 느낌에
아직 피얼룩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 검을 뽑아들고선
그 사이로 달려들어가 한 녀석을 크게 베어버렸다.
다른 녀석들이 동요할 새도 없이,
소매가 붉게 물든 하얀 유카타자락을 휘날리며 다른 녀석들마저
차례차례 베어나가고, 살점을 도려내었다.
대략 20명은 되어보이는 그 수에도,
오히려 범접할 수 없는
살기를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