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얗다........'
멍하니 풀린 눈으로 쓰러진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하나둘씩 자신의 검은 피와 검은 머리카락,
검은 유카타마저 서서히 가려간다.
선혈로 인해 피어오르는 눈위의 꽃.
'일어나자. 일어나자. 제발, 일어나자.'
흐릿해져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흩날리는 눈과 은발.
그리고 또다른 흩뿌려지는 검은 피. 일어나야만 했다. 그가 싸우고 있다.
모두가, 싸우고 있다.
"어이, 괜찮나! 어이!" -히지카타
어느새 히지카타가 이쪽으로 와선 그녀를 불러대고 있었다.
복수? 종족? 그런 것들은 사실상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소중한 자들과 있고 싶었을 뿐.
딱히 복수를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히지카타. 라이터 있어?"
"아아, 있다만. 그건 갑자기 왜....." -히지카타
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죽여야만 한다.
그것에 대한 변명으로 어쩌면 복수라는 명분을
멋대로 갖다붙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피식 웃고서
히지카타의 손에 들려있던 마요네즈모양 라이터를 들었다.
"취향하고는........"
그리고는 발목에 감겨있던 천을 다시금 세게 동여매고서
그 라이터를 가지고 진검을 한 손에 빼들고서
긴토키와 타이치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이! 어디가! 어이!!" -히지카타
히지카타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로.
저 멀리 은발을 붉게 물들인 사내가 보였다.
언제 또 다친건지. 그녀는 한숨과 함께 의미모를 슬픈 미소를 띠었다.
"너........!" -타이치
긴토키가 그제서야 그녀를 보고 눈치채자 타이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무언가가, 무너졌다.
"이미 늦었어.....이 빌어먹을 영감....."
타이치의 왼쪽 옆구리를 뒤에서 그대로 관통한 칼날.
검의 손잡이를 쥔 그녀의 손까지 조금 안으로 말려들어가
검은 피가 솟구쳤고, 그녀는 타이치의 등뒤에서 중얼거렸다.
타이치는 조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웃기는군. 이 정도 검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타이치
"아니."
그 말에 그녀는 힘빠진 얼굴로
씨익 웃으며 타이치와 긴토키를 보았다.
"그정도로는 죽지 않........?!" -타이치
갑자기 멈춘 타이치의 움직임.
그녀는 가쁜 숨을 뱉어내며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래. 그녀의 손도 그 상처 안에 약간 말려들어가있었고,
그 손에 쥐어져있던 라이터. 그 안에서 불을 지폈더니,
상처부위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큭.......! 이 자식이........!" -타이치
타이치가 그녀를 향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검을 치켜들자,
긴토키가 그 검을 그대로 튕겨낸 뒤
타이치의 다리를 베고서 그녀를 안아들었다.
"하하.........마요네즈 라이터 맛이
어때......우라기리 타이치........"
그녀는 타이치의 등에서 검을 뽑아내었고,
그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드러누워버렸다.
서서히 검게 물드는 하얀 눈과 그를 감싸기 시작하는 검은 연기.
점점 연기가 되어 흩어져가는 그의 모습도,
그녀의
시야 속에선 흐려져갔다.
파묻혀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