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좀 개운하네." -긴토키

평소 자신이 반 쯤 걸치던 하얀색 유카타만 입고 대충 오비를 두른 채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떨며 욕실에서 나오는 긴토키이다.
어느덧 복도의 불은 꺼져있고 복도 옆쪽 큰 테라스에 나있는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우주의 별빛만이
환하게 그의 은빛머리칼을 비추었다.

'음?' -긴토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 다른 녀석들이랑 똑같이
침대에 뻗을 생각으로 걷던 그는,
그 테라스의 창 밖에 보이는 별을 보다가
테라스 난간에 서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별빛을 등지고서 그림자처럼 있는 검은색 유카타와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자.

"너 안자고 뭐해?" -긴토키

그녀를 보고는 긴토키는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그녀의 옆으로 가 난간에 기대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야 몸이 좀 움직이길래.
잠깐 별구경이나 할까해서."

"나 참.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온거냐?
하여간........." -긴토키

짙게 어둠이 깔린 테라스.
그리고 바깥에서 희미하게 이 어둠을 비추는 별빛.
그녀는 한동안 아무말없이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고,
긴토키는 그런 그녀 옆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짙은 어둠이 둘을 갈라놓고, 다시금 짙은 어둠이 둘을 만나게한다.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긴토키가 들어가지 않고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보고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뭘 그렇게 빤히 보는거야, 긴토키~"

긴토키는 그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걱정마. 그 정도론 안 죽으니까."

그래. 그녀는 아까 그의 목소리에서 알아차린 것이다.
불안함. 두려움. 아무리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언젠간 이별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긴토키는 그녀 만은
자신의
옆에 있어줄 것이라 믿었기에.

"누가 언제 걱정했다고....!" -긴토키

"뻥치시네. 아무튼, 걱정마.
다시는 아무것도 놓지 않을거니까."

그 말에 긴토키는 겉으로는 시큰둥해했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안심이 동시에 교차했다.
저 말에 대한 안심과 저 말에 담긴
또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그녀는 긴토키를 보며 하핫하고 짧게 웃을 뿐이다.

"긴토키."

"왜?" -긴토키

긴토키를 부르고선 그쪽으로 다가가 그의 앞에 서는 그녀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작게 읊조렸다.

"어디......."

그녀가 그러자 긴토키는 뭐하는거냐며
물었지만 그녀는 계속 중얼거렸다.

"어이, 뭐하는 거냐니........" -긴토키

그리고는 이내, 그대로 발뒷꿈치를 들어올려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짚고서 눈높이를 맞추고는, 웃으며 그의 앞에 섰다.
처음엔 이런 것은 꺼려했지만 귀까지 빨개졌으면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긴토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거 키스냐? 그런거지? 그런거냐!!
그렇게 긴토키가 감고있던 눈을 살며시 떴을 땐,
그녀는 이미 그에게서 떨어진지 오래였다.

"잡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검은색의 나비한마리.
긴토키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녀는 긴토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나비가 있었네. 나중에 놓아줘야겠다."

"긴상의 소년감성을 짓밟지 마, 요녀석아-!!" -긴토키

"에? 무슨 일 있어?"

"하여간......." -긴토키

긴토키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말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아직까지 얼굴이 붉은 그녀를 보며 혼자서 읊조리듯 생각한다.
그녀 입에서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다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들은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으앗! 갑자기 끌어안지마, 이 자식!"

긴토키는 버둥거리는 그녀를 안은채 키득거렸다.

"정말......" -긴토키

"뭐냐, 그 말투는?" -긴토키

"네, 네, 긴토키 따위 절대로 싫습니다-"

"그 반대면서." -긴토키

".......알면서 묻는거 아니라고 저번에도 말했어."

긴토키는 벌써 말라버린 자신의 머리를 보고서
그녀를 안고 있는 상태 그대로 얼마동안 있었다.
그녀는 오늘뿐이라며 그에게 안긴채 가만히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본 건 어렸을 때 이후론 처음이군.....' -긴토키

그는 그녀를 안고서 기댄채 생각했다.
평범한 하루에. 평소와 똑같은 식사에 똑같은 일들.
아니. 일은 조금 다르려나. 그래. 분명 돌아간다면 이제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하루일거야.
느긋하고 태평하게 보내겠지. 마치 진짜 가족처럼.

하지만 조금은 다를 것이다. 지금은 그녀가 옆에 있으니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나날들이 될 것 같았다.
너무나도 특별하고, 소중한. 그야말로 삶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날들이.

"아아, 역시 (-)는 이 긴상이 없으면 안된다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요녀석아.." -긴토키

"뭐래. 얼굴 표정은 그렇다 쳐도
지금 이 심장소리 어쩔거야, 이거." -긴토키

"그러게 말이다."

오늘은 별이 너무나도 밝아서.
그리고 그 별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가 너무나 흐릿해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고요한 어둠속에 들리는
기분좋은 심장소리가 너무나도 크게만 들려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림자는 달에 이별을 고하고.
그 어둠으로 인해 갈라졌다가
다시금 그 어둠으로 인해 그림자에 이별을 고하고서 한 마리 검은 나비가 된다.

그렇게 은빛 나비의 곁에서 맴돈다.
오늘부터는 저 별빛에 빛나는 은빛머리를 가진 그를 기억하겠지.
저 별을 볼 때마다 그녀는 오늘의 그를 기억할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멀어져가는 자신의 고향을 보고선
딱 한 방울.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제일 마지막으로 욕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