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Story : 저녁노을이 가라앉은 뒤에 -의 후의 이야기 입니다]

쨍그랑.하고서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방안을 갈라놓는다.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다다미방.
가구도 무엇도 없으며 큰 창하나가
남쪽을 향해 나있는 방 안에서,
창틀에 몸을 반쯤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앉아있는 짙은 보랏빛 머리칼과
날카롭고 예리한 녹안의 소유자가 마시던 술잔을 깨버렸다.
그 깨어진 파편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주먹을 꽉 쥔 그의 손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자,
그의 앞에 있는 노란색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놀란 기색을
잔뜩 하고서 말했다.

"시..... 신스케님....! 피가.....!" -마타코

"..........나가라." -신스케

"하지만 손이........"

그는 자신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않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마타코에게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다시금 싸늘하게 말했다.

"나가라고, 말했다." -신스케

마타코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을 나갔다.
차마 더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날카롭긴 했지만 평소보다 더 떨리고 있었으며,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가웠지만
그마저도 묘한 떨림이 가시질 않았기에.
그렇게 혼자 방에 덩그러니 남은 그는,
자신이 깨부순 술잔의 파편으로 인한 손에 난 상처를 지그시 보다가
다시금 이빨을 바드득갈며 주먹을 쥐었다.
뚝뚝 떨어져내리는 선혈이 불빛에 반사되었다.

"...........빌어먹을." -신스케

어쩐지 그 자식이 갑자기 배의 경로를 바꾸더라니.
신스케는 손에 엉겨있던 파편을 털어내고서 유카타의
소매를 조금 찢어내어 대충 지혈했다.
이까짓 상처쯤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그는 오히려 화난 표정이였다.

"태양 아래선 아무것도 못하는
토끼 새끼 주제에........." -신스케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하는건데.
어쩐지 그 타이치란 영감이 너와 비슷한 분위기 같더라니.
착각이 아니었다 이건가.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과 분노에
신스케는 입에 곰방대를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걸 이제 알아채다니.

'역시 그 때, 내밀었던 손을
더 뻗어 네 손을 붙잡았어야 한건가.' -신스케

처음에 방황하는 그림자를 위해 내밀었던 손이었지만
어느순간 그 손을 잡아주길 바라고있었다.
그 손 끝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와는 적으로 만났던 그.
그렇게 얼마전 재회했을 때 더이상 그녀는 적이 었으며
신스케의 옆에 있지 않았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과거를 감춰야만 했던거지?
그런 의문이 지금에서야 풀렸다.

"감히....... 사람을 가지고 놀아.....?" -신스케

너무나도 화가 났다. 돌아오지도 않는 과거의 일에
운운하며 다시 그림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그녀에게 덧씌웠던 막부에게도,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간 녀석들에게도,
태양을 자신이 어두운 곳 아래로 끌어내려 그 열기를 식히고,
차갑게 빛나는 달로 만든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만들어주리라 다짐하는 그였다.

내가 먼저 그녀를 찾는다면.
그렇다면 다시 그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영원히 태양이 뜨지 않는 이곳에,
다시 너를 띄우고서 안을 수 있을까.
신스케는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다.' -신스케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며 눈을 지그시 감는 그다.
분명 그녀를 찾으려면,
꽤나 많은 방해꾼이 들러붙겠지.
그렇게 되면 이 몸이 이렇게 그대로 성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괜찮아.' -신스케

절대로 죽을리가 없다. 전쟁당시에도, 반시체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와도, 난 죽지 않았다.
내가 돌아갈 장소에 네가 있는 한, 나는 절대 죽지 않아.
하지만 그 장소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대신 썩어빠진 세상이 드리웠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부술 뿐이다.
그리고 다시 이 손으로 내가 돌아갈 장소를 되찾고서,
그 장소에 있어야할 너도 되찾을 것이다.

그는 그 생각을 끝으로 감고있던 눈을 번쩍 뜨고서
결의에 찬 녹안을 번뜩였다.

기다려라. 달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그 누구도 찾지 못하게.
그리고서 녹이 슨 칼날을 다시 날카롭게 세우고,
각오를 새로 다지고서 너에게 갈테니. 그리고......

그렇게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떠돌던 귀신은,
자신과 같은 자에게서 느끼던 동질감과 그 검은빛의 달을 쫓아 손을 뻗는다.

그것이 끝내 닿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계속-


잃은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