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이다." -신스케
그녀를 결국 찔렀다. 아주 짧은 단검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 단검은 그녀의 마음까지 관통한 것 같다.
아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내가 애써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무너뜨렸다.
스스로 내가 모든 것을 부수어뜨렸다.
"어......째서......."
그래. 어째서냐. 어째서 너는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보지를 않는거냐.
대체 어째서! 차라리 미워해라.
그런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지 마라.
대체 얼마나 나에게 잔인한 짓을 시켜야
나를 놓을거냐......너는.........
"말했잖아.
더 이상 여기엔 네가 지킬것이 없다고.
더 이상 그림자. 흑영은 없다고." -신스케
아니야. 네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너에게 굶주려있다.
그 미소를 너무나도 보고싶다. 오히려 너에게 필요없는 것은 이 몸.
"자....장난이지....?
응? 신스케........!"
내가 있어봤자. 너에게 있어 내 마음은 걸림돌일 뿐이다.
이따금 나를 동경의 눈으로 봐주어도.
아무리 혼내고 잔소리를 하며, 투정부려도.
그리고 괴로움에 울거나 기쁨에 미소지어도.
그것은 친구로써의 타카스기 신스케일 뿐.
그걸 알기에 지금 이 정도에서 너를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내 절벽 아래로 떨어져선 한 손으로 매달렸다.
저 아래는 강. 미리 알아두었다.
떨어져도 죽을 만큼 수심이 얕지 않으며,
그렇다고 물에 빠져 죽을 만큼 깊지도 않다.
조금 숨이 막히긴 하지만, 익사는 하지 않는다.
이 정도 찔린 상처는 그녀의 회복력이면 금방이다.
그리고 이 강을 따라가면 마을 하나가 있다.
설령 그녀가 물에 약하더라도 이 때까지 전장에서
맞아온 비에 비하면 그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그래. 모든 것은 너를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상황들.
"제발.....장난이라고 말해줘.......!"
아직도 너는 나를 믿는거냐. 그러지마라. 차라리 분노해라.
내가 일부러 악역을 자처한 것은
네가 나를 증오해서라도, 나에 대한
복수심을 가져서라도 끝까지 살아가길 바랬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래. 더 이상 너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언제나, 멀리. 너가 나를 보지 못하는
먼 곳에서 나는 너를 언제나
지켜보며 너의 행복을 보며 웃어줄테니.
더 이상 흑영은 없다.
내가 지금 죽이는 것은 네가 아닌, 흑영으로써의 너일 뿐.
제발 부탁이니 평범하게 살아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아아, 차라리 지금 너를 구하고 모든 것이 장난이라 말하면.
이 모든 것이 용서될까. 다시 너의 미소를
하염없이 보며 아까처럼 안을 수 있을까.
한순간 드는 생각에 또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나야말로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래. 모든 것은 잔혹한 이 현실로부터.
".....미안하지만,
이건 장난따위가 아니라 '현실'이다." -신스케
그러니까, 살아라.
네 손으로 이 잔혹한 현실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너는 그저 그곳에서 웃으면 돼. 너를 위해 악역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녀가 떨어져내림과 동시에 흩날리는 따뜻한
눈물이 내 볼에 와닿는다.
이 가혹한 세상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