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에 온몸에 들러붙어있던 피를 씻어난다.
물에 풀어진 검은색이 잉크 번지듯 점점 흐려지더니 사라진다.
그 마지막날에 맞았던 비처럼, 시냇물이 온몸을 휘감는다.
물 밖으로 나와 잘 개어진 검은색의 유카타를 걸치고서 하얀색의 오비를 둘렀다.
한숨을 내쉬며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나 푸르다.
벌써 봄이 된 걸까. 푸른빛이 황량하던 대지를 채워간다.

"(-)." -긴토키

풀숲을 두어번 손으로 치우며 나오니 세 명이 앉아있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이따금 전쟁 때도 한가해지던 날이면,
각자 자신의 유카타를 걸친 채 마을도 가고, 비가 올 땐 술 한잔도 기울였었지.
뭐, 사실 나랑 즈라 몰래 타츠마랑 긴토키, 신스케는
유곽에 간 적도 있지만. 모른 척 해준 것 뿐이라구?

"오랜만이네. 그 모습은." -신스케

"아아, 그런가? 뭐, 난 잘 모르겠지만."

흑영으로서의 내가 아닌, 그저 너희의 친구로서의 나.
너희에겐 이런 내 모습이 오랜만일지도 모르겠지.
그래. 그건 나도 잘 알고있어. 하지만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었어.
나는 언제나 너희에게 그저 친구로서 있고 싶었는데.
흑영이 아닌, (-). 그렇게 있고만 싶었는데.
내가 그림자처럼 늘 뒤쪽에서 숨어있는 탓에, 보지 못해서일까.
검은색의 머리가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머리도 꽤 길었네.

".........이젠 정말. 끝이네."

우리 넷은 아무말없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그 하늘과 별 다를게 없는데.
왜 나는 아직도 저 하늘을 보면 눈물짓고 싶은걸까.
진짜 되찾고 싶었던 하늘을, 아직 되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들 어쩔 생각이야.....?"

내가 옅게 미소 지으며 모두에게 눈을 돌리자, 다들 아무말이 없다.
각자의 생각은 나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
더 이상 돌아갈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걸.
너희들이 가는 곳을 쫓아가야하는 걸까. 그림자는 빛없이 살 수 없어.
빛이 강하면 강할 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니까.

'즈라.........'

아마 즈라는 양이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바른생활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박혀있는 녀석이니까.
분명 세상을 바꾸려 들 것이다. 무력이 아닌, 머리로써. 마음으로써.
하지만 나는 그럴 만큼 강하지 못해. 그러니 그를 따라갈 수 없다.

'신스케........'

신스케는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에 복수하려 들겠지.
이해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니까.
하지만 난 너무 약하다. 그러니 그를 따라갈 수 없다.

'긴토키........'

긴토키는 대체 어쩔 생각일까. 도저히 저 눈을 읽을 수가 없다.
멍하니 풀린 붉은 눈은, 그저 하늘로 향해있을 뿐.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와 똑같았다.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내려온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그렇게. 계속.
피로 몸을 적신 채 미쳐갈 때면 언제나 그러하였다.
아아,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뭐가 옳고, 그른지. 뭐가 선이고 악인지.

"하아........."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춤에 있는 검의 무게가,
왜 오늘따라 무거운 것만 같을까. 어린 시절에도 결코 무겁지 않았는데.

"어디가?" -긴토키

"잠시 둘러보고 올게. 금방 올거야."

아마 이젠 검에 달린 책임의 무게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어린 시절 검에 달린 무게는, 그녀와 나의 영혼의 무게. 그리고 복수의 무게.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 뒤엔 그들을 지키기 위한 무게가 더해졌고,
전쟁에 나와선 동료를 위한 무게. 그리고 생명의 책임에 대한 무게가 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방황하는 내 영혼의 무게가 더해졌다.
그런데 어찌 무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꼭 와야 돼." -긴토키

그가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이대로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걸까.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싱긋 웃어보이고서 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긴토키.
다시는 사라지고 싶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은, 하지 않을거야.

다시는 너희의 손을 놓지 않을게.
그러니까......

"하늘이..... 너무 푸르네......"

너희도 날 놓지 말아줘.
아직 혼자가 되기에는, 그림자인 나에게 있어 저 하늘이 두려워.

울려퍼져라. 진혼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