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은 생각보단 빠르게 지나가
어느덧 완연한 가을밤이 되어버렸다.
여름의 끝을 슬퍼하기라도 하는 듯 여름의 마지막 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서 카부키쵸의 거리를 유유히 거니는 우산 하나.

"아......피곤해.
비는 이래서 싫다니까.
긴토키 이 자식 심부름 시킬거면
월급이나 제대로 주던가......"

그렇게 툴툴거리며 비속을 걸어간다.
어느덧 하늘에는 그믐달이 떴다. 비구름 때문인지
그마저도 너무나 희미해서 하늘아래의 대지는 너무나도 캄캄했다.

'하루 안들고 다녔다고
이렇게 피곤할 줄은......'

어제 잠시 검을 두고 다니다가 다시 검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니
가뜩이나 비 때문에 무거운 몸이 더 무거운 것만 같았다.

'오늘따라 몸이 더 무겁네.......'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잿빛과 밤하늘이 섞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빗방울이 얼굴을 간지럽히자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그녀다.

"어지러........."

그 순간, 갑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마치 술에 취한 듯 어지러워져만 갔다.
너무나도 어지러워서 눈 앞이 흐렸다.
누군가가 그녀의 우산을 뒤에서 뺏어버린 것.
그대로 비를 맞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누가.........!"

소리치기도 전에, 뒤에 있던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막고서
빠르게 그녀의 눈에 하얀 천을 감아 보이지 않게 한 뒤 어딘가로 끌고갔다.
그 도중 비를 너무 많이 맞은 그녀는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잠들어있었을까.
눈을 떴을 때는 어느 항구의 컨테이너 위에서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지고 그 수갑에 쇠사슬이 컨테이너에 고정되어있었다.

"이게 무슨......"

어느덧 비도 그쳐있었고
구름 뒤로 숨어있었던 그믐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달빛아래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그런 고요함에 침 삼키는 소리마저 생생했다.
그리고, 귓전을 파고드는 것은.

"이제야 눈을 뜬 건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군." -???

왠지 모르게 익숙한, 오싹함.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위쪽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앞의 컨테이너 위를 보았다. 그래.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아직까지도 그 날의 악몽에 끔찍하게 새겨져있는 그 목소리.
낮고 험악한 느낌의 중저음. 그래. 그 목소리였다.

"모습만 컸을 뿐 그 때와 똑같군." -???

모든 것을 빼앗아갔던 남자.
모든 것을 불태우고 이 모든일에 있어 그녀에게 발화점, 시발점이 됬던 남자.

우라기리, 타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