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몇 년 정도가 지났다.
오늘의 날씨는 맑음. 저녁이 되자 태양은 하늘에 이별을 고하고서
주홍빛 노을을 하늘에 확산시킨다.
그 확산하는 저녁 노을 아래 온통 까만 마을의 거리를 가로질러 뛴다.
대장간일로 잠시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다.
지금쯤 그녀..... 아니. 유키는 검을 만들고 있겠지.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미소가 노을처럼 입가에 번진다.
"유키! 나왔어!"
내가 활짝 웃으며 들어가 그녀가 심부름시켜 구해온 검정색의 금속들을 내려놓자
쿵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기사 우리 행성은 중력이 다른 곳들에 비해 5배는 강하다고 들었다.
여기서 느리더라도 다른 행성에선 빠르고 힘도 강력하단 소리다.
암살, 용병부족을 배출하는 수용소라고 불리기도 해서 그닥 기분이 좋진 않지만.
"아, (-)왔니?" -유키
(-). 이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나의 이름.
버려지던 그 날부터 적어왔던 것 같다.
대략 2살쯤 인 듯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아 그냥 그 이름을 쓰고있다.
유키는 검을 두드리다가 쓰고있던 고글을 살짝 벗고서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응! 타이치 자식한테 가니까 이거 가져가래. 맞지?"
유키는 수고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받아 기분이 좋아져 헤실헤실
웃고만 있는 내 뒤로 드리우는 그림자.
그리고는 위화감에 고개를 돌렸을 땐 누군가의 큰 손이 내 뒷덜미를 낚아채
들어올려버린 뒤였다.
"감히 누구한테 자식이라 하는 거냐." -타이치
"끄악! 안 놔?! 놓으라고!!"
이 빌어먹을 자식. 그렇게 속으로 녀석을 잔뜩 욕하며 발버둥을 쳤다.
타이치는 더 이상 날 죽이려고도, 이용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이곳에 들러 무기를 사가고무기를 만들 재료를 나에게 전달하게 한다.
타이치는 쪼잔한 자식이다. 나한테 주는 재료가 담긴 자루에 나 힘들라고
이 자식이 돌을 몇개씩 넣는 걸 다른 사람들은 알랑가몰라.
그래봤자 난 원래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도, 힘도 조금씩 더 세니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괜찮니, (-)?" -유키
"으응.... 목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유키는 입이 삐죽나온 나를 미소를 띤 얼굴로 보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그녀는 그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쨘! 생일 선물이야, (-)!" -유키
"생일..... 선물.......?"
유키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칼날이 색이 검정색인 검.
어른용인 건지 꽤나 크고 무겁지만 이 정도는 금방 익숙해질테니 상관없다.
며칠전부터 밤을 새가며 만들던 검이, 이 검인 듯 했다.
최상급인 재료를 가져오라길래 타이치 녀석의 주문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생일을 너도 나도 모르잖아.
그래서 우리가 만난지 1주년인 오늘로 결정! 이랄까." -유키
"그게 뭐야~"
나는 그대로 그녀와 똑같이 미소지었다.
그녀는 내 두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의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
그리고는 다시 아까와 같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약속해줘. 이 칼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쓰겠다고.
그리고 너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쓰겠다고."
그 말에 담긴 속뜻도 모른채 나는 밝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힘들어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에 무슨 일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자, 저녁밥 먹고 씻고 자자."
나에게 다시 웃어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오늘따라 왠지 슬퍼보였기 때문에-
"........응!"
혼자라는 이름의 상처가, 그녀에 의해 서서히 치유되어갔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을 겪은 나는 단시간에 그 상처가 회복되어갔다.
하지만, 회복되고 있는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기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을 잘 알고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할 뿐이다.
그렇지만,
역시 신은 내 편이 아닌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