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가라앉아 노을로써 확산하던 시간마저도 끝나면,
모든 것은 다시 어둠속에 파묻힌다.
하늘의 달뿐만이 오로지 밝을 뿐이다.
그 달이 비추는 이 대지도, 전부 검다.
애초부터 전부 검은색 뿐이었으니까.
건물도, 돌도, 대지도, 사람들도.
하늘과 구름, 태양, 달을 제외하고 전부 검정색 뿐인
실로 딱딱하기 그지없는 이곳이, 유감스럽게도 나의 고향.
그렇게 어둠 속에서 작은 단도 하나를 품에 안은 채
이 어린 몸으로 나는 오늘도 달린다. 살기 위해.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어떠한 색도 섞이지 않은 검은색의 피가 흐르는
이 심장은 미칠 듯이 뛰어왔다.
잠시 좁은 골목사이로 숨어 입을 막은 채
애써 숨소리를 줄이고 기척을 감추었다.
잠시 뒤 들려오는 발소리가 날 더 미치게했다.

"젠장..... 쪼그만게 발은 빨라가지고......"

그래. 발이라도 빨라야 살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바로 죽거나,
또는 평생 이용당할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난......

"이 돌연변이 꼬마.... 감히 그분을 건드려?"

돌연변이니까.

'돌연변이.... 꼬마. 맞는 말이야.'

우리 쿠로족의 특성은, 다른 종족들과 비교했을 때
감정이 메마른 것처럼 거의 없다는 것과
대체로 검은 머리색에 회색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가장 핵심은, 누구보다 은밀하고 빠른 그림자와도 같지만
'불'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죽으면 그 육신조차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런 자들 사이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생존하는 법과 죽이는 법을 먼저 배우며 자라온 난, 돌연변이다.

흑발은 가지고 있지만, 눈동자색은 회색이 아닌 검정.
그리고 속도가 다른 쿠로족보다 빠르다는 것.
무엇보다, 불이 아닌 '물'에 약하다는 것.
그런 나는 돌연변이로서 언제나 살기위해 달린다.

'갔나........?'

조심스레 골목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았다.
발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손에 쥔 단도를 꽉 쥐고서 나오려던 그 순간,

"찾았다."

"........!!"

등 뒤에서 와닿는 서늘한 기운.
그리고 목에 와닿는 검의 차갑고 날카로운 감촉.
고개를 살짝 돌리자 보이는 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하나의 회색 눈동자였다. 한 쪽 눈에서는 검은 피를 흘리며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한 중년의 남성.
짧은 검은 머리와 새까만 망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손에 인해 잃은 눈.
그는 현재 쿠로족의 실질적인 수장이자
내게 있어선 피해야만 하는 상대인 자다.

"우라기리 타이치( 裏切り 太一 ).....!"

마지막 무기로 쥐고 있던 단도마저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던졌다.
그는 검을 거두어 그것을 튕겨내었고,
나는 그틈을 타 또 다시 미친 듯이 달렸다.
저 검의 칼날은 밤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우리 행성에 사는 이들의 모든 검은 그렇다.
검정색의 칼날. 우리 행성의 흙과 돌은 전부 검정색이고,
그것들을 정제해 만든 검은 왠만해선 절대 부수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색도 저래선 보이지도 않아.
결국, 나는 또 다시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나.....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해야돼......?'

마을의 큰길에 들어서도 보이는 건 없다.
불이 꺼진 등불들과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집들.
어떻게든 숨어야만 했다. 그자는 내가 불에 약하지 않다는
이유로 평생 이용할 생각이겠지.
어차피 살 이유도 없는 인생이지만, 그런 건 싫다.
그렇게 얼마나 해매었을까. 어느 목조건물에서
쇠와 쇠의 마찰음과 함께 작은 빛이 새어나왔다.
누가 있던 상관없었다. 그저 아무생각없이 그곳으로 달렸다.


"누.... 누구 있어?!"

그렇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흡사 대장간의 풍경이었다.
아까 그 마찰음의 정체는 검을 만드는 소리.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건 대략 30대 전후반으로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불에 약한데도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는걸까.
그녀는 어린몸으로 상처를 잔뜩 뒤집어쓴 채 떨고있는 내가 불쌍했나보다.
조금 놀라는 기색. 왜.....? 우리 족은 거의 감정이 매말랐는데.
이 여자는 아주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와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하고 만 것 같다.

"도와줘......!! 제발.......!!"

끝내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처음으로 만난, 감정을 가진 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부모라는 사람의 그림자를 처음 본 그녀에게서
찾을 정도로 나는 꽤나 긴박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조금 측은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 눈은, 놀람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뀌어갔다.
그 시선에 위화감을 느끼고서 뒤를 돌았을 땐,

"몇 번씩이고 번거롭게 하는 군, 꼬마." -타이치

그가 서있었다.
그 싸늘한 시선이 온몸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왜 내게 그런 힘을 늦게 주었는지 까지도,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