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영에 온 뒤, 히지카타는 그녀에게 갈아입을 옷을 주었고
이내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채 히지카타의 방으로 들어왔다.
다행히도 대원들은 모두 나간터라 욕실을 신경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 그러니까.... 머리 ....말려주마."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애써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말했고,
그녀는 말없이 히지카타의 앞에 앉았다.
히지카타는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옷.... 빌려줘서 고마워......"

작게 읊조리는 그녀에게 괜찮다며 말하는 그다.
솔직히 말해 히지카타는 후회 중이었다.
빨래를 미리 거두어놓지 않아서 남은 거라곤 하얀 와이셔츠 하나.
할 수 없이 그거라도 입으라고 빌려줬지만
히지카타 입장에서는 이성의 한계를 느끼고있었다.

".......아깐 미안."

처음으로 꺼낸 그 말에,
히지카타는 거칠게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털었다.

"하여간 너란 녀석은......" -히지카타

"사....살살 좀 해!"

물에 젖어 뻣뻣해진 머리카락이 된 탓인지
그녀는 살살하라고 연신 말해대었다.
아직도 조금이지만 떨고있는 걸 알아챈 히지카타가
그녀에게 물었다.

"춥나, (-)?" -히지카타

"아니......수건 때문에 앞이 안보이긴 하지만."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히지카타가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를 털어주던 도중,
그 너머로 약간의 웃음소리가 들린 듯 했다.

"왜 웃어?"

"아아, 옛날 생각이 조금 나서. 말이지." -히지카타

히지카타의 옅은 미소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
히지카타는 수건을 치웠고 그제서야 그녀와 두 눈을 마주했다.

".....비 오는 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건 우리 둘 다 같군 그래." -히지카타

"왜아까부터 혼잣말 해? 알아듣게 좀 말해."

그녀가 제대로 말하라며 살짝 눈을 째리자,
히지카타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때는 상처입은 나를 네가 구했었지." -히지카타

".................."

그 때의 기억은, 이따금씩 가시가 되어 두 사람을 찌른다.
비가 오기 직전. 그는 그녀에 의해 돌아갔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후.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서
혼자서 그 검게 물든 몸을 이끌고 가버렸다.
그 때부터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던 둘의 관계는 결국
갈등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아직 그 날의 목소리는, 그들의 귓가에. 그 눈에 새겨져 있겠지.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널 찾아낸 꼴이군." -히지카타

"......그 일, 좀 잊을 수는 없는거야?"

그녀의 울음이 조금 섞인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네게 해야만 했던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기억하기로 결심했었으니까." -히지카타

"해야만 했던.....말.....?"

히지카타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몇 번이고 돌고돌아 여기 까지 왔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만 했던 그 말도,
그 날의 일도 나는 아직 기억하고있으며
지금은 너도 내 앞에. 이렇게.....
히지카타는 그제서야 입을 떼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많았다.
왜 또 혼자 짊어지냐고. 너에게 나는 짐일 뿐이냐고.
그리고 괜찮냐는 말도 있었지만, 아냐. 그런 말 따위가 아냐.
내가 했어야했던 말은, 그런 말들이 아니다." -히지카타

고개를 숙인 채 후회하는 그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다시 거두었다.
이미 한 번 너를 내쳤던 손이니 만큼, 다시 네게 건내려면
적어도 너의 말은 끝까지 들은 뒤 뻗어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그녀의 귓가에 이어서 들리는 것은
조금은 울음섞인 그의 목소리.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했어." -히지카타

그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나 어긋나버렸다.
그런데 너는 왜 하나도 변하지 않은거냐.
왜 다시 내게 손을 건네었던거냐, (-).
히지카타는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네 상처를 알아보기 보단
내 상처부터 감추는데에 급급했던거야."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었다. 울 것 같지만 희미하게나마
미소짓는 그녀. 기쁜 듯 보여, 히지카타는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마주웃어주고서는 그대로 와락 안아버렸다.

"이제와서 하기엔 너무나도 멀리 돌아와버렸지만...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 -히지카타

그녀는 아직도 떨리던 손을 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렇게 그의 등에 손을 얹고서
가볍게 쓸어내리다가 꽉 안아버리는 그녀의 입에,
히지카타는 가볍게 입을 한 번 맞추고선 다시 꽈악 안았다.

처음부터 서로가 바랬던 그 말은,

이미. 알고있었는데-

오늘따라 맞잡은 그 손이, 너무나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