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조금 쌀쌀하지만 평화로운 오후.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한가한 해결사다.
카구라는 동네 애들과 논다고 나가버렸고,
신파치는 무언가 준비할게 있다며 나가버렸다.
그렇게 뒹굴거리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와삭와삭 과자를 씹으며 점프 책장을 넘기던 그녀가
시선은 책에 고정한 채 반대편 소파에 엎드려
마찬가지로 점프를 읽고 있는 긴토키에게 말했다.
"저기, 긴토키."
"엉? 왜?" -긴토키
긴토키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서 그녀를 보았다.
역시나. 쌀과자를 입에 문 채 점프를 보고있다.
하지만 입만은 움직였다.
"내일 카구라랑 신파치, 신파치네 집에 가서 자라고하면 안되나?"
"뭐 상관없......" -긴토키
그 순간 긴토키에 뇌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잠깐잠깐. 생각해보니 내일은 긴상의 탄신일이잖냐.
그런데 애들을 전부 다른데로 보내놓는다고?
뭐야, 뭐야. 무슨 신혼부부가 애들 재워놓는 것 같잖냐.
혹시 생일 선물이 자신이라며 마음대로 하라던가....
그렇게 불건전한 망상을 하는 그와는 다르게 그녀는
아무런 변화 없이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아 그게, 실은 누구를 좀 불렀거든."
"누군데?" -긴토키
긴토키는 일어난 김에 마실 것이라도 마시자 싶어
냉장고에서 딸기 우유 하나를 꺼내었다.
그렇게 마시고 있자 그녀의 대답이 돌아왔다.
"즈라, 타츠마, 신스케."
"푸흡!" -긴토키
분홍빛 밀키웨이가 바닥에 흩뿌려지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콜록거리는 긴토키는 무시한 채.
"윽.... 갑자기 뱉기는. 사레라도 들린거야?"
"지금 태평하게 그런 말이 나오냐-!!" -긴토키
긴토키는 겨우 진정했고 그녀는 책을 덮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 그와는 다르게
태연하게 걸레로 바닥을 치우는 그녀다.
"즈라나 타츠마 녀석은 그렇다고 쳐도, 그 자식은....!" -긴토키
"그래서."
아까의 태연함과는 다르게 싸늘해진 그녀의 목소리에
긴토키는 조금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정리를 끝난 뒤 긴토키와 마주보고서 말했다.
"신스케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
그래. 언젠가는 부딪히리라는 것 쯤은 알고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응?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보는 눈에서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느껴져
아무런 말도 못하는 긴토키였다.
"난 여전히 신스케를 친구라고 생각, 아니 믿고있어."
그녀는 옅게 미소짓다가 긴토키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퐁퐁 두어번 정도 두드렸다.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네."
타카스기 녀석에 의해 그 만큼 상처입어놓고서도
너는 또 다시 친구라는 단어 하나에 손을 마주잡았다.
그래. 적은 적이지. 동시에 아니기도 해.
하지만 그건 전부 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일테니.
"그럼 녀석의 친구인 나도 같은 선에 올려놓으려고?"
그 말에 긴토키는 심장이 죄여오는 듯 했다.
시큰거리는 이 느낌은 전에도 느껴왔다.
어렸을 때도, 양이지사였을 때도.
한 순간에 모두가 갈라졌어도 너 만은 모두를 쫓았다.
제 갈 길 가기에만 바쁘던 우리들을.
긴토키도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알고있었다.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라고.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긴토키
"단 하루."
또 다시 말을 끊는다.
정말로 화를 낼까 생각도 했지만,
화를 낼 수 없잖냐, 요녀석아.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그런 슬퍼보이는 표정으로 말하면-
"멋대로 정해버려서 미안하지만, 어차피 언젠가 만날 거라면
적어도 중재할 이가 있을 때 만나는게 낫지 않겠어?"
긴토키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중재는 언제나 네 녀석이 맡는구만. 예나, 지금이나.
"남아있는 것을 지키려는 것과, 그것을 부수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나도 알고있어......"
지키려고 했다. 내 검으로는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그 허무함 속에서 빠져나온 뒤부터
그 분이 남긴 것을 지켜오려 발버둥쳤다.
그것을 부수어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녀석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너는. 나와 그 녀석이,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너는.
"난. 부술 것은 부수고 지킬 것은 지키고 싶다고."
또 다시 만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빛난 걸까. 긴토키는 더 이상 한숨짓지 않았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긴토키
그렇게 말하고서 아까 그녀처럼,
그녀의 머리를 두 어번 손바닥으로 두드릴 뿐.
"나 참.... 대신 나중에 이 빚은 받아낼 줄 알아라, 요녀석아." -긴토키
한숨섞였지만 제대로 미소짓고있는 그를 보고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진다.
"......응!"
그렇게 시간이 최대한 느리게 가길 바라는 긴토키의 소망과는 다르게,
해는 생각보다 금방 저물었다.
어제의 이 녀석들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