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시로, 가서 좀 도와줘라." -곤도
곤도가 히지카타에게 말하자 그는 귀찮다는 듯한 태도를 내비췄다.
"싫다고, 곤도씨. 내가 그딴 짓을 왜 해." -히지카타
"그래도 좀 착한 일도 해봐라. 저녀석 좀 봐, 만날 집안일도
다 거들면서 너랑 도장 녀석들 연습상대에 코치까지 해주고 있잖아." -곤도
확실히 그렇다. 언제나 모든 것을 주려고 했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싶은 듯 했다.
"......알았다고." -히지카타
"역시 그럴 줄 알았네!" -곤도
결국히지카타는 툴툴거리며 집의 뒷뜰 쪽으로 갔다.
거기서 조금더 뒷쪽의 풀숲으로 들어가니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이, (-). 도와줄........." -히지카타
그는 그 순간 그자리에 멈춰섰다.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나무 너머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세하고, 또 날카로운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서 날아온 검붉은 피 한 방울.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멧돼지 피려나.
'뭐하는거야? 저녀석.' -히지카타
멧돼지 손질은 끝난 듯 했다. 가죽이나 털 등을
칼로 단시간에 능숙하게 벗겨내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그녀가 옆의 나무를 발로 세게 차선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지게 한 것이었다.
'나 참. 뭐하는거지.
얼른 불러서 돌아가기나 하자.' -히지카타
히지카타가 앞으로 나서려던 그 순간, 다시 한 번 아까와 같은 미세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일었다.
'이건.........?' -히지카타
그녀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보였다.
검을 들고서 춤을 추는 듯 했다.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나뭇잎들을 검을 마구 휘둘러 자르고 있었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철컥 하고 검을 넣는 소리에 히지카타는 정신을 차렸다.
그의 앞쪽에서 나풀대는 남은 나뭇잎 하나.
'하나....남았는데. 왜 이건 놓친 거지.' -히지카타
그의 앞쪽에 팔랑거리다 떨어진 멀쩡한 나뭇잎하나.
그것 빼고는 전부 잘려있었다.
그녀는 잘린 나뭇잎들을 모으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그런데에 서있지마, 히지카타."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그 나뭇잎은 베지 않았다.
그 나뭇잎과 함께 그도 베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것도 잠시, 그는 놀라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이, 뭐야 방금 그 움직임은.
저번에도 그렇고 대체 너 정체가 뭐냔 말이다." -히지카타
그녀는 아무 대답도 않고손질한 멧돼지의 살코기와나뭇잎을 보자기에 싸선 등에 둘러맸다.
"이 나뭇잎은 향이 좋아서 고기랑 먹음 딱이거든."
"회피하지마! 대답해!" -히지카타
실실 웃으며 말하던 그녀의 표정이 그의 윽박에 일순간에 바뀌었다.
싸늘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 느낌은 그 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왜?"
그녀의 태도에움찔하던 히지카타는 이내 다시 말했다.
"왜.....왜냐니, 그야.........!" -히지카타
그는 끝내 말을 잊지 못했다.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었기에.
그녀는 그대로 싸늘하게 그의 옆을 지나쳤다.
"모르면 잠자코 있어.
알아봤자 피차 피곤해질 뿐이야."
"어이, 기다려! (-)!" -히지카타
그녀는 그대로 가버렸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뒤를 터덜터덜 쫓아갔다.
"...........젠장."
먼저 앞서간 그녀가 그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읊조렸다.
싫었다.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는 자신이.
흑영이던, 쿠로족이던간에 모든 것을 잊고 새출발할 수 있다고,
평범하게 웃으며 살 수 있다고 잠시나마 착각했던 자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위선자처럼 버티려는 자신이.
'차라리......처음부터
평화라는 것을 몰랐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려는 것이 잘못인지.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또다시 끓어오르는 이 피를
주체하지 못해 검을 휘두른 것이 잘못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잘못이던, 잘못이 아니던 간에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다면. 완전히 깨닫지 못할 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다면.
이토록 평범하다는 것과 평화라는 두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아아, 나왔어."
갈망하는 일 또한 없었을텐데.
그래. 그 때 유키와, 그리고 선생님과 했던 약속을
들어주어선 안되는 것이었는데.
망설였던 것이 문제였을까.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약속하나 때문에
이리도 갈망한다. 죽음과 평화, 그 두가지를.
하지만 그들덕에, 아무것도 몰랐기에
지금 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괴로움도, 행복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처음과 똑같이 그들을 향해 웃어보인다.
그 가식에
자신조차도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뭘까, 이 감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