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어느새 마당은 수많은 시체와 붉은 피로 물들었고,
나는 죽은 천인들 중 한 녀석의 삿갓을 바닥에서 주웠다.
그리고 혹시 비가 올 때 몸이 젖을지도 모르니
집이 부숴진 잔해 사이에 있는 소매가 긴 검은 유카타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머리를 묶고서 삿갓을 썼다.

"지금 갈테니까."

나는 또 다시 묻는다.
어째서 나를 버렸냐고. 신은 어째서 날 버렸냐고.
그리고는 생각한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은 악마를 찾아가는 법이라고.

'지금 갈테니까 그저, 기다리면 돼.'

설령

'악역은....내가 도맡을테니까.'

그 인간 자신이
악마가 되버린다 할지라도.

피가 약간 튄 하얀색의 긴 바지.
그리고 허벅지까지 오는 검은색 짧은 유카타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색 오비의 끝자락,
어깨에 걸친 긴 검은색 유카타와 검은 머리카락.
허리춤에 찬 검은색 칼날의 검.

"에도라........"

그것이, 그곳에 있던 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제부턴, 혼자만의 전쟁이다.
그러니 나는 다시......

"......다들. 잘 있으려나."

검은 그림자. 흑영이 되어 에도로 향한다.

하늘을 비추는 저 여름날의 태양이, 어제의 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렇게 이별을 고하고 처음과 똑같은 각오를 다지고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름바람이, 몸을 한 번 휘감는다.


숨이 막힐 정도로-



[Main Story : 불청객도 손님은 손님]
[Fin]


아무래도 가봐야 할 곳이 생긴 듯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