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대충 둘러보고 나자 그녀를제외한 해결사 셋은
아주 죽을 상으로 숨을 헐떡였다.
저절로 장딴지가 단단해지는 기분.
카구라는 더는 못 걷겠다며 칭얼거렸다.
"지쳤다, 해......자고싶다, 해......" -카구라
"들어가서 씻고 일찍 자. 벌써 자정이 다되가네."
신파치는 카구라를 데리고서 먼저 배 안으로 향했다.
오늘 채석 작업은 여기까지 인건지 선원들도 하나둘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초점없는 풀린 눈으로 무표정을 띤 채 한 걸음을 내딛었다.
".....안 가볼거야?" -긴토키
그러다가, 뒤에서 긴토키가 내뱉은 한마디에
잠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뒤돌아있는 그녀를 보며 긴토키는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힐끔거렸잖아.
거기에 가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거아냐?" -긴토키
".................."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 전부 맞는 말이다.
자신을 거두어 준 그녀와 살던 집.
모든 것이 녹아있던 집은 이미 일그러진 집은 재가 되었겠지.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어?" -긴토키
그녀는 뒤돌아선 채로 긴토키 몰래 눈물을 살짝 닦았다.
가고싶지만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그 날의 기억들은 이별을 고하고서
수많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살아나 옥죄어왔다.
".......없어........그치만........."
끝내 버티던 그녀는 그대로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참회하듯 눈물을 떨구었다.
그 눈물은 검은 대지에 흩뿌려 스며들어갔다.
"가서.....모든 것을 보고
버틸 자신도......없어.........."
그녀는 눈물로 범벅진 얼굴로
뒤를 돌아 자리에서 일어나선 그를 보았다.
긴토키를 보는 그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보이면서 동시에 무서웠다.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애써 웃고있는 표정.
얼굴은 웃고있지만 눈은 그대로인 그 표정에 섬뜩할 정도로 서글펐다.
"무섭다고. 그런 감정은.
상처를 입는게 너무나 무서워.
흔적도 없이 그녀가 내 앞에서 사라져 간
그 날 부터, 상처를 입는 것이 일상이었어."
이제까지고, 몇 번이고 깨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한 유리.
유리에 작은 충격을 가하면 어느정도면 깨지지는 않지만,
흠집은 남는다. 그 흠집에 또 다시 상처가 생기면
그것은 다시 부숴져 갈 곳을 잃는다.
그럼 가마같은 뜨거운 고통속에서 다시 녹아
이별을 고하고 식으며 다시 살아나,
그런 식으로 언제나 그녀는 처음과 똑같이 그에게 웃어보였다.
"........(-)." -긴토키
선 채로 한 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린채 눈물을 흘리며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흐느끼는 그녀의 앞에 긴토키가 서서 말했다.
"누구나 상처받는 걸 두려워 해." -긴토키
그리고는 이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그녀를 안고서 속삭였다.
"나도, 카구라도, 신파치도,
예전의 친구들도, 다른 녀석들도.
모두들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다만 그 상처를 치유해줄 누군가가
언제나 옆에 있어주기에 버틸 수 있는거라고." -긴토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타이치와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그녀로 인한 상처.
쇼요선생이 치유해주었던 상처는 다시금 천인들에 의해 벌어졌고,
그 틈을 전쟁이란 이름의 쐐기가 박혀들었다.
흑영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며 상처입은 채 뛰어오던 그녀는
다시금 절벽에서 꽃이 지듯 떨어져내렸다.
그렇게 수많은 인연을 다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언제나 상처가 아물려는
기미가 보이기도 전에 다시 생기고, 또 다시 늘어만 갔다.
"이젠 너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잖아.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떨고 있는거냐." -긴토키
겨우겨우 은빛의 자국을 따라 긴토키를 만났지만,
어중간하게 다가갔다가 또 다시 상처입는게 두려워
처음부터 다가가지 못했다.
막부에서 양이지사를 해하려는 속셈을
어느정도 알고서 그를 지키려했지만,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상처를 끌어안았다.
자신속의 괴물을 끌어안았다. 괴로워하면서 까지.
".............이게 너무 무서워."
그녀는 긴토키를 살짝 밀어낸 뒤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근의 옷깃을 꽈악 쥐었다.
"자기 맘대로 막 뛰어. 행복이란 감정에,
또 본능이라는 검은피의 감정에.
그 두가지가 마구 섞여댈 때마다
몸이 분해되는 느낌이야."
구름이 바람을 타고 조금 흘러가면서 달빛이 살짝 반짝였다.
하지만 이내 잿빛의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에 또 다시 숨어버린다.
"아파. 어떻게 할 방법도 없을만큼 아파.
무서워. 차라리 전쟁터에서 싸우는게 나을 정도로."
그녀는 긴토키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쥐고서 고개를 숙인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넌 죽지마.
아니, 이젠 아무도 죽게 두지 않을거야.
한 번더 상처입으면 그 때는
그대로 나도 죽어간 동족들처럼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아....."
긴토키는 그런 그녀를 살짝 안아주었다.
하늘을 보니 곧있으면 비가 올 것 같았다.
저쪽에서 신파치가 오라고 손짓하지만
이내 카구라가 눈치가 빠른건지
신파치를 끌고 들어갔다. 그는 다시금 작게 말하였다.
"어때. 넌 어떻게 하고싶어?" -긴토키
"나는..........."
망설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긴토키는 씨익 웃어보였다.
"원하는 대로 해. 난 언제나 네 편이니." -긴토키
그 말에 그녀는 깨물고있던 아랫입술을 다시 풀었다.
그리고는 눈물 때문에 탈수증세가 보이기 시작하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