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죠........?" -신파치

신파치가 당황하며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대려하자
그녀는 그 손을 막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
난 괜찮으니까, 얼른 내려가."

"그렇지만.........!" -신파치

"어서!!"

그녀는 신파치를 보며 윽박질렀다.
신스케는 보지 못했지만, 신파치는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초조하고, 조금은 불안해한다.
신파치는 조금 주춤거리며 부축하던 그녀를 놓아준 뒤
긴토키를 불러오겠다며 뛰어가 버렸다.

"그 상태로 나랑 싸우시려는건가.
절름발이 아가씨." -신스케

"그 입 닥쳐라. 날 그렇게 부르지 마."

신스케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째선지 싸울의사는 없어보이는 그녀를 보며 큭큭하보 낮게 웃었다.
아니, 싸울 의사가 아닌 싸울 정도의 저력이 남지 않은걸까. 어쩌면.

"한 가지만 물어볼게. 타카.....아니. 신스케."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그를 불러왔으니까.
그의 표정이 조금 일렁였다.
그녀는 속입술을 깨물어 애써 감정을 억누르다
이내 조금은 슬픔을 옅게 얼굴에 드리운 채 말했다.

"왜......그랬어........?"

어째서 그녀는 아직도 그 질문을 할 때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는걸까.
신스케는 그 얼굴을 보며 아무말없이 먼산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래. 일단 그건 제쳐두자.
사적인 감정 넣지 말고."

둘 사이에 너무나도 어색하고 겉잡을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잡고싶지만 잡을 수 없다.
마치 이미 내뿜어버린 담배연기처럼.

"당장 배를 멈춰.
에도가 이대로 부숴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럼 너는.
내가 이 세상을 부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역시." -신스케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곰방대의 재를 탁탁 털었다.
그 재가 바닥의 눈에 떨어지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이면서 그 재를 하얗게 덮어갔다.

"왜 부수려고하는거야.
바꾸는 방법도 있잖아.
무작정 부수는 것은, 바꾸는 방법이 아니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바꾸기에는 이 세상은........" -신스케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더니 이내 말끝을 흐렸다.
바보야? 넌 바보냔말이다. 그렇게 하면 너도 분명 망가질거야.
나도 막부의 방식이 맘에 안들고, 선생님을 앗아간 자들도 싫어.
아니, 증오해.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옳지 않아.
무고한 시민들도 죽어나갈거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 난 그런 것 따윈 납득할 수 없어.
참다못한 그녀가 소리쳤다.

"대체 너란 녀석은 어째서.......!"

그리고 소리치는 그 순간. 이 배의 반대편에서 쾅하는 굉음과 함께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올라왔다. 폭발이었다. 분명.
그녀가 당황하며 난간에 기대어 반대편을 보고있자 신스케는 혀를 찼다.

"쳇. 즈라 녀석인가." -신스케

"즈라?"

어쩌면 아까 그녀가 느꼈던 기척은
카츠라나 엘리자베스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배를 폭파시킬 작정인가본데. 쳇, 귀찮게 됬군." -신스케

"뭐?! 이 바보즈라........!
신센구미도 있긴 하지만
나랑 해결사들도 있는데.....!"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갑판으로 내려가려했다.
그 순간, 목에 들어오는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에 우뚝 멈추었다.

"어딜가는거냐. 고작 저 막부의 개들과
꼬마녀석들, 그리고 저 바보 녀석 때문에 죽겠다 이거냐." -신스케

신스케가 날카로운 칼날 못지 않은 눈매로 그녀를 째려보고있었다.
검을 그녀를 향해 겨눈 채로.
그녀는 당황한 기색, 겁에 질린 기색 하나없이
몸을 틀어 신스케와 마주보았다.
어째서일까. 저 일그러진 표정은 분노가 아닌, 괴로움에 일그러져있다.

"너도 가자."

"뭐............?" -신스케

신스케는 그 말에 검을 들던 팔에서 힘들 조금 뺐다.
이내 귓가에 닿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이미 검을 거둔지 오래였다.

".........죽지마."

난데없는 그 말에 신스케는 당황한건지 조금 눈매가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칼을 거두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왜지?" -신스케

나는 널 죽였는데. 왜지?
그렇게 묻는 것 같은 그의 눈빛에 그녀는 씨익 웃어보였다.

"........아직 내가 널, 조금이나마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널
완전히 믿도록 납득시켜야할 의무가 있어, 너에게는."

그녀의 말에 신스케는 날카롭던 표정을 거두었다.
이제야 진짜 너로 보이는구나. 애써 슬픔을 비웃음으로 덮고,
가면 속에서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네가 아닌, 진짜 너.
그는 이내 읊조리기 시작했다.

".............려고.....했....." -신스케

"뭐.....?"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부수고서........." -신스케

신스케의 결심이 선 듯한 말에
그녀는 조금 사납던 표정이 다시 누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일그러졌다.

"무슨......!" -신스케

"신스케!!"

갑자기 신스케의 아랫쪽 바닥에서 빛이 일더니
폭발과 동시에 뜨거운 기운과 연기가 올라왔다.
그 폭발이 덮친 것은 신스케 뿐만 아니라 가까이있던 그녀도 마찬가지.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전망대 한쪽이 아예 부숴져버렸다.
그렇게 둘은 아래로, 마치 그날의 그녀처럼.
꽃이 지 듯 떨어져내렸다.

마치 우박처럼 굳은 느낌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