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꼭 와~" -카무이

"아, 온다니까!"

일이 생겨 일찍 가봐야한다며 가버리는 너에게 손을 흔든다.
처음과는 다르게 솔직해져있다.
그리고 다른 이가 다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다른 이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 좀 놀랍지만.
하지만 예전의 그 눈빛을 볼 수 있으니 상관없나.
그 나약한 것들이 죽어나가면 너는 그 눈빛과 오싹함,
강함의 즐거움을 내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사실 그 때. 너와 적으로 마주쳤을 때 너흴 놓아준건
네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종류의
'강함'을 너는 그 눈에, 몸에, 심장에 가득 새겨놓았었으니.
지금의 네가 무너져내리는 걸 보고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
그 뒤에 되돌릴 수 없다면 답은 한 가지.
네가 나를 죽이거나, 내가 너를 죽이고서 따라 죽거나.
뭐가 되던 간에 그러지는 않을 생각이다.

"....예전엔 감정 없이도 조금 더 부드러운 미소였는데, 말이지." -카무이

지금의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까진.
그 날의 싸늘함이 사라져서 이렇게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너는 대체 뭘 품고서, 어떠한 시선으로 날 보는거지?
내가 보는 것들에서 너는 왜 익숙한 듯 다른 시선으로 보고있는거지?
그 눈을 도려낸다 해도 알 수 없을 것들 투성이다.
너에 대해 전부 안 뒤에 그렇게 해도 늦지 않겠지.
슬슬 나가야할 것 같아 우산을 집어들다가 구석에
부숴진 채 박혀 있는 낡은 우산을 발견했다.

"이게 아직도 있었나." -카무이

그 때 그녀가 박살내버렸던 내 우산이다.
배에 꽂히는 그 감각 나쁘진 않았는데 말이지.
대련을 권하면 늘은 아니지만 즐길 수 있다.
가면 갈 수록 속도가 느려지지만 미세한 차이이니.
그냥 컨디션의 좋고 안 좋고의 차이려나.
그렇게 그걸 다시 그 자리에 던져놓으려던 내 눈에,
우산 살이 눈에 들어왔다.

"(-) 피인가?" -카무이

검게 엉겨붙은 피. 붉은 빛이 조금도 돌지 않는다.
완전히 검은색의 굳어버린 혈액.
그러고보니 타이치라던 그 영감 정보도 있었지.
그녀는 보통 쿠로족하고는 다르다.
그렇다면 더욱 알고싶어지는게 당연하잖아?
더 알고, 파헤쳐서. 그 틈을 찾아내서.
너를 완전히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할 것이다.
다른 나약한 녀석들을 네가 스스로 포기하는 선택지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리는 없을테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래서," -카무이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오전.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가 연구실 안을 가득 메운다.
손에 묻어나는 피의 감촉이 너무나 더럽게 느껴진다.
하얀 서류종이가 붉게 물들어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다.
하얀 가운을 물들이며 죽는 녀석을 보는 다른 녀석이
나를 보는 시선마저 역겹다.

"히익......!" -의사

질척이는 피를 죽어서 쓰러진 녀석의
하얀 가운에 닦아내고서 그대로 찢어버렸다.
이내 내 앞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입은, 어느쪽?" -카무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네가 요즘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그리고 가끔 내가 모르는 너와 지금의 너가 겹쳐보이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죽어가는 이유가.
네게서 묻어나던 죽음의 냄새가 네가 지키는 나약한 것들
때문에 짙어져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고통 속에 버티다 최후를 맞이할 거라면.

".......오랜만에 대련을 좀 해봐야겠는걸." -카무이

내 손으로라도. 너를.
두려워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