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같은 풍경이 지나간다.
캄캄한 바탕에, 별이 반짝이는. 계속 반복되는 끝없는 우주의 풍경.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던 한 소년은 그 푸른눈을 뜨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날의 눈과도 같은, 하얀 피부.
심해와도 같이 번뜩이는, 푸른 눈동자.
그리고 노을빛을 닮아 주홍빛을 살짝 띄는
분홍빛의 머리카락이 길게 땋아져있었다.

"이제야 일어났구만." -아부토

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소년은 그 목소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문에 기대어 서있는 황갈색 머리를 가진
중년남성은 한숨을 늘어지게 쉬며 뒷통수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앞으로 이틀 정도면 지구에 도착할거야." -아부토

그 한마디에 뒤돌고 있던 소년의 두 어깨가 살짝 움츠려졌다.
하지만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내 그 입에서 그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낮고 아주 싸늘한 목소리가 나지막히 새어나왔다.

"더. 더 빨리. 최대한, 한시라도 빨리......." -카무이

주문을 외우듯 말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있던 아부토는,
그를 나무라듯 다시금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런다고 함선이 빨라지진 않습니다, 제독-
정신차려, 임마! 애초에 네 녀석이
사람 잡는 방법을 모르는거라고." -아부토

".........닥쳐, 아부토." -카무이

카무이는 신경질 적으로 자신의 옆에 있던 베게를 뒤로 던져버렸다.
뒤로 돌아있는 채로 베게를 던졌을 뿐인데
아부토의 바로 옆을 빠르게 지난 베게는
벽에 부딪히자마자 큰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고,
그 바람에 안에 있던 깃털이 나풀거렸다.
아부토는 터져버린 베게를 잠시 보다가 한숨을 쉬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도 아니까..... 닥치라고......." -카무이

카무이는 머리가 지끈거리기라도 하는건지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읊조렸다.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붙잡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강제적인 권력과 폭력으로 잡는 방법 밖엔.
사람을 마음으로 붙잡는 법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며 아예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지 못해서, 상대를 상처입히고 말아.
그래서, 어쩌면 그래서 나는 '강함'이라는 것에만 매달려
이 손에 사람의 온기 대신
그 뜨거운 검붉은 피의 감촉을 갈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순간 호센이 생각나
한편으론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약속 했으면서........" -카무이

난 아직 잊지 않았어. 납빛으로 드리운 하늘에서
탁한 물방울이 내려온 그 날의 약속을.
카무이는 한 손으론 머리를 부여잡고서, 한 손으론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척 하고 있는 걸까.
어느쪽이던 간에,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

".............응. 약속, 했으니까." -카무이

그거면 됬다고. 나라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다시 그 약속을 떠올리게 하면 된다고.
카무이는 그렇게 자신에게
다시 주문을 걸며 멍하니 앉아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창에 비친 자신의
싸늘한 무표정을 보다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이젠 다시는......." -카무이

그리고는 다시 평소처럼 씨익 웃어보였다.
이 미소에, 수많은 이들의 피가 튀었고.
이 미소에, 수많은 이들의 절규가 덧씌워졌으며,
이 미소에,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꺼뜨렸다.
그렇기에 이 미소에 다른 이의
따스한 미소를 덧씌울 수가 없어서.
그 방법을 모르겠어서. 그렇게 언제나
그는 그런 식으로 웃어왔다.
따스한 미소로 꾸민, 차가운 무표정.
이런 자신이 싫었던 적은 그 어느때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싫다. 이젠 당신이 먼저 날 돌아보게 만들겠어.
이제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슬픈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을거야.

나 이외의 사람에게, 당신은 죽을 수 없어-

"아아- 모르겠다~♪" -카무이

그렇게 그녀를 마중나가기 위한
미소를 얼굴에 덧씌운 채, 카무이는 방을 나섰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