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맑은 날이었다.
정확히는 누님에게한 데이트 신청이 퇴짜맞은지 5일째 되는 날.
솔직히 두 쪽 다 바쁘니 어쩔 수 없나.
소고가 툴툴거리며 기둥에 기대어 낮잠을 자던 그 때,
"소고~"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평소처럼 튕길까 하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녀가 헐떡이는 소리에 급한 일인 것 같아
안대를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아니십니까. 어쩐일이세요?" -소고
소고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혹시 알바자리 구해줄 수 있을까?"
"또 형씨때문?" -소고
"그건 아냐."
"그럼요?" -소고
그 말에 그녀는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의 표정이다.
돈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데, 대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나?
그렇게 의아해하는 소고를 의식한 건지
이내 그녀는 부드럽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아아, 어디 좀 갈 데가 있어서."
평소같으면 같이 가면 안되냐며 능청스럽게
말을 건넸겠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소고였다.
간다는 곳이 어디인지 묻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을 의식하여 웃는 그녀의 모습은 익숙했다.
미츠바 누님이 아플 때면, 언제나 당신은 내게 웃어주었으니.
소고는 피식 옅게 웃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 -소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좀 멀어서. 준비할게 많아."
소고는 눈으로 흘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는 혹시 다른이와 가는 걸까 싶어 묻는다.
"혼자....?" -소고
"그래 임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
때 늦은 사춘기라도 온 겁니까-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고는 머리에 주먹이 꽂혔다.
역시 평소랑 똑같이 세시기만 한데 무슨.
소고는 서류 보관하는 곳으로 향하더니 몇 개 뒤지다가
알바 전단지가 아닌 제복을 꺼내왔다.
"......전단지 아냐?"
"여긴 일자리 구하는데가 아닙니다 누님.
하지만 일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소고
"아- 혼나는데....."
"그래서," -소고
소고는 그녀가 제복을 받으려 하자 휙 다시 가져갔다.
얄밉게 웃는 그. 역시 도S 왕자 녀석.
그녀는 쯧하고 혀를 차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안 하실겁니까?" -소고
"...컸더니 눈치만 빨라져선."
그녀는 옷을 받아든 뒤 소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허리춤에 검을 바로 차는 제복 차림의 (-).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풀고는 소고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갑시다요, 대장 나리."
다른 이를 위해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적 따위 없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이 기쁘다는 듯 웃는다.
수십가지가 있지만, 이것도 당신이 빛나는 이유 중 하나.
하지만 그것들 중 당신 자신을 위하는 선택지를 본 적은
많지 않았던 걸로,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충돌을 막으려 자신이 부딪힌다.
단순히 지키겠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의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대변할 이유로는 부족하단 말입니다.
잃고싶지 않은 당신에게 위험한 일을 맡기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건,
"뭐해? 안 오고."
지금의 당신이,
"아아," -소고
내가 알던 모습에 조금
어긋나서 겹쳐있는 듯 한.
"지금 갑니다." -소고
아주 무서운 착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