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어라. 여긴 어디지? 나 아직 안 죽은 거야?
아까 그곳과는 정반대인, 너무나도 따뜻한 곳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기에,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건 어느 방이었다.
아까 어떤 남자를 본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아, 일어났군요." -쇼요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귓전에 와닿았다.
그는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들고 있었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왠지 유키와 닮은 그 미소에 순간 멍하니 있었지만 떠올렸다.
그간의 모든 것들을. 그렇게 웃으며 내게 다가와 날 이용하려던 자들을.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서 주위를 빠르게 살핀 뒤 옆에 뉘여져있던 내 검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빼내어 그를 향해 겨누었다.

"오지마. 더 이상 오면......."

그 남자는 잠시 나를 멍하니 보다가 이내 천천히 들고있던 대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내 몸에 깊게 새겨진 본능적인 두려움이 내게 검을 휘두르게 만든다.
검을 한 번 휘둘러 위협을 해보아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오..... 오지 말라니까.....!!"

내가 휘두르는 검에 그의 소매가 베였다.
아무래도 팔을 조금 스친건지 피가 나고 있었다.
또 다시 누군가를 베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과
내 몸을 뒤덮는 두려움에 떨며 검을 더 이상 휘두르지 못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건가요." -쇼요

그 한마디에 나는 들고있던 검마저 놓쳐버렸다.
땡강하고 떨어지는 검의 소리마저 이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때문에 팔을 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떨고있는 내게
두 팔을 뻗어 꽈악 안아주었다.
그 온기와, 목소리에. 이대로 내 몸이 부수어질만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왜........?"

울음에 의해 일렁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묻는다.
너무나 닮았다. 내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그녀와.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 몇 년만에 겨우찾은 안식.
이런 나조차도 받아들여주는 사람.

"자신이 생명을 빼앗은 자들을 위해 눈물짓는 사람은,
결코 헛된 생명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그 검을, 바꾸면 됩니다." -쇼요

또 다시 나는 그렇게 울고 말았다.
이 사람의 미소는, 온기는, 말들은.
전부 진짜다. 겉으로 꾸민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사람을 베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나도 그들과 똑같아 질까봐.
내가 바라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아니.
쇼요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을 잊지 못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검은 버리세요. 적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한 자신을 베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혼을 지키기 위해. 」


그녀와 했던 약속을,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또다른 빛을 붙잡았다.
빛이 밝을 수록 그로인한 그림자는 짙어진다.앞으로의 나는 그림자로서 그 빛을 위해 검을 휘두를 뿐이다.

누군가의 손길에, 안심해버린건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