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기침이 나왔다. 목구멍 너머로 넘어오는 비릿한 기운.
피가 조금 입 밖으로 토해져나왔다.
아까 전투 도중 명치 부근에 발차기를 세게 맞은 탓일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나아졌고, 나는 검을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질척하고 뜨거운, 그리고 비릿한 그 피의 감촉이 잠시나마 아까의 고통을 잊게했다.

"..........(-)." -카츠라

뒤에서 나를 부르는 즈라의 목소리에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표정이 어떤 표정일까.
그리고 나는 그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것들이 너무나 두려워 그를 보지 못했다.

"즈라. 너도 얼른 긴토키랑 신스케가 있는 쪽으로 가."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난 자네를 지켜야만 하네." -카츠라

나는 그의 그 한마디에 무의식적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

내 물음에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답한다.

"우리는 양이지사이기 이전에 친구.....지 않은가." -카츠라

그 말에 또 다시 울컥. 내가 틀렸었던 걸까.
이런 나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누구도 내 곁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전부. 전부 내가 틀렸었던 걸까.
아직까지 내 옆에 있어주는 너희는 어째서?
동정이라면 사양하겠어. 그런데 왜 난......

"......다음 공격 전까지, 잠시만 혼자있게 해줘."

"자네 마음대로 하게." -카츠라

또 다시 울고있는 걸까. 내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더도 말고 덜고 말고. 딱, 한 방울.
아마 얼마 안 있어 비가 올 것이다.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이를 악물고서 살아야하는 걸까.

"유키........."

숨을 곳도 없는 황량한 대지. 그리고 납빛의 하늘 아래서 그녀의 이름을 읊조린다.
이 근처에서 살아있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혼자있겠다 해놓고서 얼마나 멀리 온 걸까. 시체더미와 나뒹구는 검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있는 나.
유키. 만약 당신이 지금의 날 보고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쇼요 선생님......."

쇼요 선생님. 만약 당신이 지금의 날 보고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대로 제가 포기해버린다면,
흑영대는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남겠죠. 구차하게.
하지만 내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운다면,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요.

"더 이상은........."

더 이상은 그 무엇도 베고 싶지 않아졌어요.
심지어는 그토록 증오하는 타이치조차도 베고 싶지 않아요.
그 무엇도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더 이상은 싫은데........"

하지만 더욱 미치겠는 건, 그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로 살인을 하는 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안다는 것.
결국, 나도 위선자라는 걸까.

"이 이상 약속을 어기기는 싫은데......
아직은 지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미리 사과할게요."

내 영혼을 지키는 검을 또다시 내려 놓고서
다른이를 위해 검을 휘두른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나 자신이 어쩌면 한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내 뒤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피식 조소를 흘기듯이 웃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아아, 역시. 너는 또다시 나를 쫓아와주는구나.
분명 너는 앞쪽에서 싸웠을텐데. 이쪽까지 쉬지않고 왔구나.
약속대로 넌 나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만약 이대로 내가 날 버린다면.

"잠시 재정비랄까. 너야말로 뭐하는거냐." -긴토키

"글쎄.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헛웃음이 나오려했지만 참고서 미소만 지었다.
하늘이 납빛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여기서 비를 피할만한 곳은 없다. 즉, 이젠 돌아갈 수 없다.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그렇기에 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머리가 울린다. 그 탓일까. 실언이 터져나왔다.

"그거 알아, 긴토키?
요즘들어 무언가를 벨 때마다 미칠 것 같은거.
처음 전장에서의 전투 때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마구 피가 들끓는 것 같은 기분이야."

기분이 더럽다. 피가 들끓는 것이,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 들끓는 느낌이 더욱 무언가를 베고, 끊으라는
시작의 신호와도 같아서 기분이 더러운 것이다.
이러다가, 어쩌면 나도 타이치 녀석과 같이 되버리는 건 아닐까.
더러움과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뭘 베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나도 모르게 검은색에 먹혀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뭣 같달까......"

내가 억지로 두어번 웃자 이내 그는 낮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울고 싶으면 아예 울라고, 요녀석아." -긴토키

그의 한마디에 나는 비웃듯 피식하고 소리를 내었다.
역시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은 너 뿐이다.
그리고 너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도 나 뿐이겠지.
나는 생각해. 백야차인 널 위해, 검은 그림자인 흑영이 존재한다고.

"잊었어, 긴토키? 우리에게 그럴 시간 따윈....."

그러니까 나는, 내 어깨위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는 이상

"없다고."

아직은 더 참아야만 해.

나는 그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서 다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향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희를 속인 것도, 그리고 아무말 않는 것도.
무엇보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고작 이런 말이나 해서 미안해.

바닥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며 둥근 원을 그린다.
이게 빗방울이 신호를 보내는건지, 내 눈물인지.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내 두 눈도 동시에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