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했더니......."

그녀는 위로 점프해 인파가 몰린 곳의 가운데를 보고는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화를 냈다.

"고작 저거였냐! 게다가 보이지도 않고......"

시덥잖은 마술쇼. 그것도 고작 어린애들 수준.
하지만 이런 곳에 오는게 적어서 그런지 사람은 많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위로 뛰기도,
기웃거리기도 하는 그녀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던 소고는,

"으왓!"

"이럼 잘 보이죠?" -소고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들어 무등을 태웠다.
갑자기 확 높아지자 그녀는 소고의 어깨를 붙잡았고,
소고는 그녀의 검이 무거워 허리춤에서 검집 채 빼내어
자신의 허리춤에 찼다.

"내....내려놔! 그리고 검도 내 놔!"

"....보통 이럴땐 여자 몸에 멋대로 손대지 말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소고

그녀는 그 딴거 신경 쓰기 보다는 검이 중요한건지
내놓으라는 말과 높아서 무서운건지 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높아서 무섭다기 보다는 떨어질까 무서운거겠죠.
그러다가 작은 생채기라도 나면, 천인이란게 들킬테고.
뭐, 전 이미 알고 있지만.....
소고는 내려주지 않았다.

"몰라! 내려줘, 소고!"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
소고는 그 말에 멈칫했고, 그 순간 무게중심이 뒤로 쏠렸다.
소고는 빠른 속도로 다시 중심을 잡고는 그녀를 내려주고선,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 번 더." -소고

"하아?"

"한 번 더 불러보세요." -소고

그녀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부르라는거야, 소고....?"

소고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지금의 누님이 부르는 내 이름.
그리고, 현재의 누님이 부르던 내 이름의 느낌과 다르다.
웬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다르다.
무엇이 다른 건지 모르지만,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서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는 그다.

"아무튼. 그냥 더 앞으로 가는게 낫겠어."

"꼭 안 봐도 될....." -소고

"볼 거야! 모처럼의 기분전환인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가운데로 향했다.
소고도 따라가려했지만, 사람도 많은데다가
이리저리 치이는 통에 그녀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먼저 앞서간 그녀는, 잠시 보더니 재미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없어."

괜히 봤나. 어느덧 공연도 끝나가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틈을 타 탁 트인 곳으로 나온 뒤 아까 방향으로
몸을 틀고서 그를 불렀다.

"어이, 소고.... 닮은 형씨! 그만 가는게....."

하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 인파속에서 너무 앞질러서 반대쪽으로 왔을까
싶어 그녀는 저쪽을 보았지만 검정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에 있나?"

더 가야할 것 같아 그녀는 앞으로 향했다.
어차피 여기에 오래있지 않을테지만, 일행이니
찾아서 돌아가려는 듯 했다.

"나 참.... 벌써 정 들면 안되는데......"

일행이라서가 아니라, 붙잡고 싶을지도.
언제나 금방 사라져 버릴듯한 관계를 떠올리면 힘들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가족도, 선생님도, 이젠 친구들마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 혼자 느린 거북이 같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누군가와 정을 붙이려 하지 않았는데.
단지 소고녀석을 닮아서라고 단정지어도 되는걸까.
그녀는 혼자서 멍하니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윽....."

그 때, 몸을 감싸는 듯한 매스꺼움과 찌릿함.
익숙치 않고 그닥 좋아하지 않는, 싫어하는 그 느낌에
그녀는 몸을 조금 움찔했다.
어쩐지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라니.

"점점 오는군......"

빗방울의 수가 늘어갔다.
그녀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달렸다.
여기가 탁 트인 광장 같은 곳이라서 비를 피하려면 더 뛰어야한다.
소나기 같지만 꽤나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비에 그녀는 잔기침을 했다.

"헉.... 헉......"

요즘에 물에 잘 안들어갔더니.....
전쟁 때는 자주 물에 맞거나 해서 어느 정도는 괜찮았는데.
역시 익숙해져버린걸까, 나.
달리고 달린 끝에 셔터가 닫힌 한 상가의 앞에 찰싹 달라붙어 비를 피하는 그녀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인가."

조금만 더 맞았더라면 연기 날 뻔 했겠는걸.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피식 웃는다.
하지만 무작정 비를 피하려 뛰었더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힘이 빠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비가 그칠 때 까지는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어쩌지...... 나 여기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 녀석이 찾을까. 이젠 상관없어질 사람인데도?
그냥 한 번 구해져서 오늘 하루만 같이 있던, 남인데도?
짜증난다. 그러길래 사람사이 깊게 사귀지 말랬잖아 이 인간아.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진짜..... 자존심 다 접어야하나....."

이 상황이 짜증나고 또 다시 되풀이 되는 사람의 관계에
그녀는 쭈그려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짓지 않는다. 눈물짓지 않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몇 배는 괴롭다는 걸 알면서도.

"오빠........"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리는 손으로 검에 손을 가져다대자,

"나 참, 그렇게 멋대로 가버리더니." -소고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자켓이 그녀의 머리 위를 덮었다.
어느덧 비도 서서히 그쳐갔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붉은 색 눈동자를 가진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저 멍하니 있었다.

"이제와서 오빠타령입니까? (-)." -소고

정말, 너무나도 얄밉지만.

고맙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녀는 입을 다문채 옅게 미소지었다.

남자로서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