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건진 것이라도 있나?" -???

역시. 대략 네다섯 정도 되는 듯 한데.....

"아니. 근처에 집은 보이지 않아." -???

"나 원. 산적질은 할 게 못 된다니까....." -???

그 한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산적?
여기까지 올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온몸에서 소름과 함께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어떻게든 쫓아낸다 해도 언젠가는 저런자들이 또 올지 모른다.
여기서 저들을 죽여야하나? 아니면 선생님께 알릴까?
아니, 차라리 지금 전부........

"거기 누구냐!" -산적 1

들켰다! 기척을 감추는 건 꽤나 자신이 있었는데.
역시. 평화라는 것에 젖어살다 보니 나 역시 변했다.
아니지 지금은 이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닌데.
그렇게 많을 생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이미 나를 발견한 뒤였다.

"응? 어린애잖아?" - 산적1

"근처에 집이 있나본데?" -산적2

이렇게 되다가는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안돼. 싫어. 더 이상은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아.
왜 항상 이런 식으로 꼬여버리는 거야. 대체 왜.
머릿속에서 동시에 외쳐댄다. 도망치라고.
어떻게든 저 녀석들을 유인해서, 그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어이. 저 꼬마가 들고 있는 거, 꽤 값 나가 보이지 않아?" - 산적1

내 검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침착해라. 숨을 내쉬고 뱉어내었다.
바람이 한 번 일고 흩날리는 내 흑발 사이로 그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검을 꽈악 쥐고서 땅을 박찼다.

"뭐해?! 얼른 잡아!" -산적1

"잡긴 누굴 잡아! 흥이다!"

"저.... 저 꼬맹이가......!" -산적2

그리고는 다리를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원래 속도를 내면 그들은 절대 날 쫓지 못할 것이다.
내 목적은 유인이기에 나는 일부러 조금 속도를 늦추어 달렸다.
오히려 일부러 느리게 달리려 하다보니 힘이 더 들었다.
게다가 요즘엔 가끔 연습시간에 목도를 휘두른 것 빼고는
검을 휘두르지도, 뛰지도 않았으니.

「암살자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순간, 예전에. 내가 떠돌이로 도망다니며 타이치에게 이용당하던 때에
타이치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버렸다.
기척을 감추고, 감정을 죽여야 하며, 누구보다 빨라야한다.
또한 강해야하고 언제나 어둠 속에서 칼날을 갈아야한다.
왜 이런 쓸데없는 말이 생각나는 건지.
멍해지는 머릿속에 나는 앞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잡았다.....!" -산적3

샛길로 먼저 가서 대기하던 녀석이, 내 앞에 있었다.
내 속도라면 그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지만,
하필 뒤쪽에 꽤나 큰 샘이 하나 있었다.
왜 하필. 왜. 왜. 왜 물에 약해서는.

"꺅......!"

잠시 멈칫한 사이 뒤에서 뻗어오는 손에 뒷덜미를 잡혔다.
딱 죽이지 않을 만큼 박살을 낼까 생각도 했지만,
내 경솔한 행동으로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실망할까 두려워져 관두었다.
돌연변이에 괴물이라 불리던 나를 보고 등을 돌릴까봐. 또 다시 혼자가 될까봐.
다시 혼자가 되는게 무서우니까
이렇게 망설임이 가득한 상태로는 검을 잡을 수 없다.

"잡았다. 꼬마야. 너희 집이 어디니?" -산적2

나는 뒷덜미를 잡힌 채 그 녀석의 질문에 대답대신 그 면상에 침을 칵 뱉었다.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표정.

"이게 미쳤나......!" -산적2

순간 뺨에 얼얼하게 후려치는 손에 시야가 번쩍했다.
그대로 땅에 엎어진 채 키득거리는 녀석들을 올려다보았다.
드는 생각은 하나뿐. 역겹다. 그리고 이런 내가 한심하다.
망설임으로 또다시 모든 것을 잃기는 싫으면서, 끝내 검을 잡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이대로 저 녀석들 손에 이별할 바엔, 내 손으로 끝내는게 맞을 것이다.

"안되겠구만. 검이라도 뺏어야......" -산적1

그래, 그러니까. 나는-

"하? 꼬마야. 검을 뽑아봤자 그런 물건은 너 같은 어린애는 못써." -산적3

"그래.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있....." -산적1

서걱하고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그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진 듯 했다.

"끄아아아악!!" -산적1

"파....팔이.....!!" -산적3

"보이지도 않았는데.....?!" -산적2

툭. 힘없이 한 녀석의 팔이 땅에 떨어졌다. 그로인한 붉은 피는 밤의 어둠에 감추어지고,
푸르던 풀색이 조금씩 물들어갔다.
내 뒷덜미를 잡던 그 팔을 벤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었다.

'나, 후회하고 있는걸까?'

태어난 것을,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한 것을, 적을 눈 앞에 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망설이고있는 것을. 그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는걸까.
유키와의, 그리고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걸까.

'누군가를 지키고, 약한 나를 베어낸다.'

이 작고 초라한 몸으로 검은 이리를 흉내내며 달빛의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
샘 근처의 젖은 흙이 내 숨통을 조여온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 의해 난 생채기로부터 검은 피가 몇 방울 떨어지고,
그제서야 모든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 자신의 혼을 지킬 검 따윈....'

내 자신의 혼을 지킬 검따윈, 애초에 없었다.
이 길을 걸을 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복수라는 이름의 칼날이 다시금 번뜩인다.

그리고, 구름이 달을 가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긴 틈을 타
그 피의 비린내와 뜨거움은 대지에 흩뿌려져갔다.

나는 조심스레 검을 꽈악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