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부......"

모든 것이 한 줌의 재로 변하여있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불에 타들어가는 그 연기에 검은연기가 희끗거리고 있었다.
전부. 전부 죽은거다. 그 누구도 예외없이.

"! 타이치........!"

우선은 그를 찾아야만 했다. 그는 이 인근 전체의 수장인 자니까.
오늘따라 달이 너무나 밝았다. 그 달빛이 닿지않는 그림자 속을
뛰어다니며 애타게 그를 찾았다.
만약 이렇게 된 곳이 우리 마을 뿐만이 아닌 행성 전체라면?
그리고 정말 나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때는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마구 흔들어놓던 그 때,
그 머리속에 물 한 방울이 떨어져 파장을 일으키듯
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가...... 있다.'

타들어가 무너져버린 잔해의 뒤로 숨었다.
아직까지도 불이 사그라들지 않은 잔해들이 몇몇보이는 걸로 보아,
이 불은 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했다.
파삭하고 잔해가 부수어지는 소리와 두 명 정도 되는 사람의 발소리가 한꺼번에 섞였다.

'타이치.......!'

그를 보고서 나는 바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이상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기가,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천인. 숨소리와 기척을 숨긴 채
그녀가 쥐어준 검을 꽉 붙들었다.

"자네 빼고 이젠 쿠로족은 존재하지 않겠군." -천인1

그 말에 나는 헉소리가 나오려는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그렇게 애써 생각해보지만
너무나 분명해진 이 상황은, 진실이다.

"다른 녀석들에게 점령당할 바엔,
가장 강한 자만 남는 것이 맞겠지." -타이치

"하긴. 감정이 무딘 자네 종족에서
아이가 생기는 것도, 그리고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예전보다 많이 힘들어졌으니........
그래도 조금 소름끼치는 군." -천인1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동족까지 없앨 정도로, 감정이 메말랐다니." -천인1

그 한마디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입술에서 검은 피가 나올 정도로 너무나 화가 나고, 또한 슬펐다.
적어도 동족애는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모두에게서 등을 돌렸다.
틀어막던 입에서 손을 떼고서, 대신 검을 쥐었다.

'타이치........ 타이치.......!!'

진실은 조금은 쓴 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사실은 너무나 써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독약이난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머리로 생각할 것 없다. 그간 눌러오던 살의가 한꺼번에 솟구친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서,
검을 뽑고 달려든다.
그가 놀랄 틈새도 없이, 어느 때 보다, 빠르게.
서걱하고 살이 베이는 소리에 더욱 미치는 것 같았다.

"죽어!!"

등을 크게 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벌써 아물기 시작하고, 부족한 피를
채우기 위해 몸에서 스스로 피를 만들기 시작한건지
그의 상처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이런. 아직 새끼 한 마리가 남아있었군." -타이치

내가 베인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의 검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흩뿌려지는 검은색의 피와 흐려져가는 시야.
그는 죄책감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도려내고 사지를 찢어죽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해도,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벌써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역시 돌연변이라 이건가." -타이치

"으...... 흐으.......닥....쳐......"

내가 바닥에 고꾸라져선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채 부들부들 떨고있자
타이치는 내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억지로 들게 했다.
그리고는 심장에 쐐기를 박듯 싸늘하게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타이치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흐려져가는 시야 속에 타이치가 다른 천인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뒤, 천인이 내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나를 어딘가로 던져넣었다.
탈출용 작은 비행정 하나. 문이 닫히고,
창 너머로 타이치가 보였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손에서 피가 나도록 창을 두드렸고,
타이치의 목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왔다.

"그래. 바로 그 분노다.
우리에게 쓸데없는 감정따윈 필요하지 않아.
어떻게든 살아서, 언젠가 내 나머지 한쪽 눈을 도려내러 와보아라." -타이치

감정을 거의 가지지 않은 그가,
처음으로 피식하고 짧게 웃자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네겐 무리겠지만."

"안 되도, 되게 하겠어!! 그리고 널......"

상관없다. 어떻게 되던 간에 상관없어.
언젠가 시체 무더기를 사이에서 타이치와 같은 모습으로
피를 뒤집어쓴 채 서있는다고 해도,
내 영혼따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죽여버리겠어!!"

흘러내리는 눈물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멀어져만 간다. 더 이상 내 곁엔 아무도 없으며,
이젠 있을 곳 조차도 없어져버렸다.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없는 목숨이지만, 살고 싶어졌다.
죽여도 내가 죽일 것이다. 그 전에 난 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먼 훗날 그와 내가 다시 만난다면,
그곳은 필시 싸움이 난무하는 어딘가이겠지.

그렇게 검은색 투성이인 작은 아이는,
봄비가 내려오는 봄날의 시작을 맞은 푸른 별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다.


[Main Story : 검은 아이]
[-Fin-]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