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하늘이. 너무나 밝다. 오늘은 보름달이 떴다.
산 안에 있는 샘이라 그런지 약간의 물안개가 일었다.
몸에 묻어있던 내 검은피가 물을 타고서 뿌옇게 번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여자로 이곳에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지금쯤 모두 자고있겠지.
'아니, 모두는. 아니려나.'
그 네 명은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겠지. 몇 시간전 있었던 그 일 때문에.
샘에서 씻으니 조금 숨이 막혀왔다.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는데,
가슴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대체..... 왜........."
그리고 이내 참아오던 눈물이 마구 터져나왔다.
이빨을 악 물고서 애써 울음을 삼켜보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왜. 왜 이래야만 하는거죠? 왜 이렇게 전 잃어야만 하는거죠?
이젠 이 질문에 대답해줄 선생님은, 이 세상에 안계신데.
내 두 눈으로 당신의 죽은 얼굴을 확인했는데. 긴토키. 신스케. 즈라도 함께 목만 돌아온 당신을 봤는데.
나는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거죠?
부탁이에요. 제발. 제발 다시 따뜻한 그 미소로, 목소리로 절 불러주세요. 제발.....
"어쩌라는 거야......."
흐느끼며 읊조려봐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어떻게해야........"
아무리 전장에서 모든 것을 견뎌내며 검을 휘두른다고 한들,
그 목표가. 당신이 사라져버렸다.
"어떻게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당신을 구해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습니다.
날 안아주었던 그녀를 위해서도,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하는거죠? 이젠 이 세상에 선생님도, 유키도 없는데.
만약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친구들이 남아있다고 말하시겠죠.
하지만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저에겐, 저를 위한 검은 이미 없습니다.
이 검을 잡을 때 부터 그런 검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구와도 이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결국,
내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야하는 걸까요.....?
"윽......!"
고동이 한 번 크게 울려퍼진다. 위험해. 이이상 물에 있는건 위험하다.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모두에게 평화를 선물해준 뒤에.
모든 것을 끝마친 뒤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옷 차림인 몸 위에 붕대를 감았다. 가슴이 조금 갑갑한 감이 좀 있긴 하지만.
그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차....! 검은 저쪽에 옷이랑 뒀는데....!
"누구.......!!"
내 외침과 동시에 풀숲에서 나오는 건, 다름 아닌 익숙한 갈색머리.
"아하하핫, (-) 자네 여기있었.......
........응?!" -타츠마
이게 아닌데. 내 머릿속에서 적색 신호가 마구 울려대기 시작했다.
여자인 걸 들킨 것도 들킨 거지만, 나 지금 속옷차림인..... 으아아아!!
"아.... 저 그러니까 자네 왜 몸이......" -타츠마
"저저저저저리 안가?! 눈 감아! 눈 감으라고!"
나는 급한 마음에 샘 바닥에 손을 뻗어 짱돌 하나를 건져 던져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타츠마가 억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그......그렇게 던지면 이승에서 눈 감겠구만....." -타츠마
지금 타츠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후다닥 물에서 나와 나뭇가지에 걸쳐두었던
내 검은 유카타를 빠르게 입었다. 오비를 대충 조였을 때 즈음,
타츠마와 함께 날 찾으러 온건지 긴토키, 즈라, 신스케가 이쪽으로 왔다.
"(-)!" -긴토키
내가 타츠마를 부축해주려 가던 그 때, 긴토키는 날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더욱 세게 쥐어왔다.
"긴토키........?"
"너란 녀석은........" -긴토키
그 손이 꽤나 떨리고 있어서. 너무나 불안해보여서.
나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너란 녀석은 얼마나 사람 피를 말려야 속이 시원하냐고, 요녀석아!" -긴토키
긴토키가 내 팔을 꽤나 세게 쥐어왔다. 내가 아픈 듯 찡그리는데도 불구하고
긴토키를 위해 가만히 있자 신스케가 긴토키를 끌어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도포를 내게 덮어주었다.
"어디..... 갔었던 거냐." -신스케
"조금 씻으려고..... 무슨 일.... 있어?"
내 질문에 신스케는 조금 가라앉은 눈을 하더니 돌아가자고 말했다.
나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즈라와 신스케가 기절한 타츠마를 부축했다.
.......타츠마에겐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그렇게 모두 다같이 돌아가고 있던 도중, 뒤에 있던 긴토키가 내 팔을 붙잡았다.
"(-), 잠깐....." -긴토키
긴토키의 적안에서 왠지 모를 감정이 묻어나왔다.
무언가 걱정이,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 했다.
그도 나처럼 심란하겠지. 나는 아무말없이 싱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긴토키와 함께 다시 샘터로 돌아갔다.
나는 그대로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