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거리는 발소리가 침묵마저 삼킨다.
그저 옅은 미소를 여전히 띤 그녀와,
굳은 표정의 긴토키만 있을 뿐.

"(-)." -긴토키

긴토키가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그녀는 여전히 웃고있었다.
억지로 웃는 느낌이 강했지만, 왤까.
어쩐지 더욱 편해지는 듯한 이 느낌은.

"너.... 누구야." -긴토키

하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한다.
너는 내가 아는 너가 아니야.
아니, 맞다고 해도
오늘의 너는 어딘가 다르다. 정말 하룻밤 사이에.
평소와는 달라. 그렇게 확신한 그에게 눈이 아닌 입만
웃어보이는 미소를 띤 채 대답하는 (-).

"누구긴 누구야. (-)잖아."

그런 대답을 원한게 아니라는 것, 알면서도.
너는 또 내게 웃는다. 역시 너다.
하지만 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나는 뭐지?
됐다. 관두자. 더 가야한다해도 돌아가야겠다- 라고
생각한 긴토키가 그녀의 팔을 낚아채고 빠르게 가던 그 때,

"그녀는 그대로야." -카무이

위쪽에서 들려오는 키득거리는 소리 섞인 말에,
긴토키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올려다본 컨테이너 위에는, 이제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을 등진 채 이곳을 내려다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쪽을 응시하는 것은 그 푸른 눈.

"바뀐 건 형씨일 뿐이니까." -카무이

긴토키가 목검을 허리춤에서 빼는 그 찰나의 순간
카무이의 우산이 그에게로 향했다.
내던진 우산을 쫓아 컨테이너 아래로 뛰어내린 뒤
우산을 바로잡아 그의 목검과 맞부딪혔다.
떨리는 긴토키의 팔과, 카무이의 조금 섬뜩한 미소에
그녀는 그저 숨을 죽인 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큭.....!" -긴토키

"카무이!!"

점점 강도가 심해지는 싸움에 그녀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어 둘 사이에 파고들었다.
흙먼지가 일었고, 잠잠해지자 서서히 걷히는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긴토키의 목검을 잡은 손과 카무이의 우산을
검으로 막은 채 헐떡거리는 그녀였다.
당황한 긴토키의 적안과는 다르게,
우산을 거두는 카무이의 청안은 싸늘해져있었다.

".....역시 지구인은 약하구나. " -카무이

그 시선이 이번에는 긴토키에게로 향한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나서게 하지는 말았어야지." -카무이

그 말에 긴토키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선다는 건 지금의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저 녀석은, 한 두 번 생각했던 말 따위가 아닌
언제나 생각하던 것을 말한것이겠지.
그건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멍하니 있는 긴토키의 앞을 가로막는 그녀를 보며,
카무이는 우산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등을 돌렸다.

"다음번에 만날 땐." -카무이

가기 직전, 뒤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흘끔 보는 그 눈.

"......죽여버릴거야, 은발의 사무라이 형씨." -카무이

그 눈에 굳어있던 것도 잠시였다.
그 뒤에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다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 -카무이

그 때 본 것은 언제나처럼 웃고있는 녀석이었다.
짜증날 만큼 닮아서. 지금 억지로 웃는 이 녀석의
미소와 너무나 겹쳐보여서 긴토키는 먼저 등을 돌려버렸다.

"제 4사단 단장 자리. 언제까지고 비워둘테니까." -카무이

그 말에 그녀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긴토키를 따라 등을 돌렸다.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대해준건 고마웠어." -카무이

끝에 들려온 그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나도."

약간의 물기가 어려있었다.

깨진 파편 위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