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케의 그 말에 나는 조금 동요했다. 아니, 실은 많이 그랬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길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나는 항상 그래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잡아주는 이가 필요해.
어렸을 땐 선생님과 친구들, 흑영일 땐 동료, 전우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몰랐다.
새장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이제서야 자유를 되찾은 새가,
어떻게 새장 밖 세상에서 살아야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너는.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 -신스케
"................"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없이 그저 내 검의 손잡이 부분을 보았다.
더 이상 지워지지도 않는 피얼룩이,
깊은 곳까지 새겨져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생명이, 이 손에 꺼져갔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낡아버린 검은 희미한 핏빛이었다.
이제와서, 어쩌겠어. 라며 나는 흙을 털어내며 일어나 그와 마주보았다.
"글쎄. 네 말대로 난 그냥 그림자일 뿐이라고?"
나는 신스케를 보고선 히죽 웃어주었다.
신스케는 그런 나를 보며 희미하게나마 마주 웃었다.
아아, 가식적이다. 이런 내 자신이 가식적이어서, 역겨워서. 미치겠다.
일순간에 날카로워지는 신스케의 녹안에 내 히죽이던 미소는 조금은 슬프게 다시 번졌다.
".........그림자가, 아니다." -신스케
신스케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내 팔을 끌어당겨선
자신의 품에 안아버렸다. 어느덧 훌쩍 커버려선, 이젠 자신보다 큰.
조금 더 커져버린 그에게 안긴 채 있는 날 향해 신스케는 나지막히 말했다.
"너는 그림자 따위가 아니다." -신스케
"갑자기 그게 무슨........."
"네 녀석의 결정을 따라.
이름의 무게에 휘둘리는
네 녀석 만큼, 꼴불견인 건 없으니까.
그리고 그 두 팔로.
너의 강하고도 여린 그 손으로
너의 생각에 맞게 검을 휘둘러." -신스케
나는 처음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이내 관두었다.
나의 어깨를 감싸안은 손이, 그리고 허리를 휘감은 그 손이.
미세하게나마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차갑고 냉혈하던 귀신이지만, 지금 자신을 안은 이 손의 온기는 진짜.
"함께 가겠나. (-)." -신스케
잔혹하다. 이건 너무나 잔인한 부탁이다.
'대답은. 정답은 너무 당연하잖아.'
내가 그 손을 잡을 리가 없다는 것을, 너도 알잖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너도 너무나 잘 알고있잖아.
나는 혼자가 아직 두려워서. 다른 이를 위해 휘두르는 검밖에 몰라.
그래서 어쩌면 너에게 쓸데없는 걱정과 불이익을 줄지도 모르고.
이번 전쟁 때도, 흑영대의 대장이면서 흑영대를 전멸에 이르게 까지 한 나니까.
신스케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채 조금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서 등을 돌렸다.
".............아니. 필요없어."
신스케는 그대로 굳은 채'역시 그런가.....'라며 읊조렸다.
그런 그의 표정은 슬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뻐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같은 웃음소리를 간직한 채 낮게 큭큭거리며 웃을 뿐.
왠지 모르게 더 낮아진 웃음소리에 난 신스케의 옆을 지나지다가
그의 바로 뒤에서 잠시 멈추어서고서 말했다.
"더 이상 이곳엔 내가 지켜야 할 것도,
내가 싸워야할 이유도 없단 것쯤은 알아.
그러니, 난.........."
나는 신스케에서 등을 진 채 그에게 내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시 얼굴을 보면, 마음 약해질까봐. 한쪽 눈을 붕대로 감고서
다른 한쪽 눈이 되어주길 바라는 어쩌면 가장 불쌍한 녀석.
그렇게 말하는 너도, 나와 똑같이 이름의 무게를 짊어졌잖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펴고서 낮고 싸늘한 목소리를 애써 유지했다.
이러지라도 않으면,
너조차도 나처럼 멍하니 하늘만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같이 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본심은 결국 짓이겨진 입술사이를 비집고서 나와버렸다.
나는 끝내 뒤를 돌아버렸다. 신스케가 서있있다.
체념한 듯한 표정이다. 아닌데.
"........그래. 네가 지켜야할 것도. 싸워야할 이유도 없겠지." -신스케
아닌데. 사실은 이게 아닌데. 누구라도 그 이유가 되어주길 바란건데.
사실은 누구보다 너희와 함께 하고 싶은데. 하지만 그건 우리 넷 모두가 아니겠지.
그러니 나는 그 괴로움을 볼 바에는, 이대로. 그냥 이렇게.
그렇게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이 선 나를, 그가 안아주었다.
'따뜻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지금이 봄인지 겨울인지 모를만큼
추운것도 따뜻한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만큼은. 너무나 따뜻했다.
아아. 얼마나 갈망해왔던 말이었던가.
이런 싸움의 폭풍에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안아줄 존재들도 적었으며 예전에 이렇게 안아주던 존재들은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사람의 체온이란 따뜻한 것이라고 새삼 느꼈다.
"그 말은 즉," -신스케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온도가 낮아진 것만 같을까.
그 순간,눈에서 나오던 그 눈물은 뚝 멈추었고,
신스케가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나갔다.
"넌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이다." -신스케
그의 손에 들린 짧은 단검 하나. 그리고 칼날에 묻은 피.
어라....? 근데 왜 피가 검정색인거지? 왜?
저런 피는 또 어디서 묻혀온거야.
"어........?"
바보네. 저런 피를 가진 사람이 지구에 있을리가 없잖아.
"시.....신스케........?"
나 빼고-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