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처에 있던 검을 집으려하자
그녀는 내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감추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내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을 보다가
이내 그녀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머리에서 맴도는 한 글자. '왜?'
"무슨 일이죠. 타이치."
"비켜라. 그 발칙한 꼬마, 이리 넘겨." -타이치
"싫어요."
왜.....
"그 돌연변이를 처음 발견한 건 나다." -타이치
"이 아이가 처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저에요."
왜......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필사적인 걸까. 그래봤자 뭐가 된다고.
나는 이대로 잡혀간다면 죽거나 실험자료로 쓰이며 평생을 보낼 것이다.
더군다나 날 잡으려던 타이치의 오른쪽 눈을 내가 잃게 했으니.
그런데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걸까.
".......그 녀석을 감싸는 이유가 뭐지?" -타이치
"그럼 당신은 이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가 뭐죠?"
"종족 발전의 대의를 위해서다. 넘겨." -타이치
점점 여자에게 불리해지는 상황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런 나의 떨림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그녀는 내 팔을 잡았던 손을 풀고서
그 손으로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순간 싱긋 내게 웃어주는 그 모습이, 너무 빛나보였다.
"이 근처에서 대장간은 여기 하나뿐이에요.
그리고 불을 다루는 직업에 면역이 된 자가
극소수라는 건 당신도 잘 알텐데요."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본론만 말해라.
난 그렇게 참을성이 좋지 않아." -타이치.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내 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도 충분히 떨리고 있었다. 이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감정이 거의 없는 쿠로족 중에서도 가장 메마른 자인 그에게 거는 도박.
잠시동안의 침묵끝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내가 키울거에요."
"하아.....?!" -타이치
타이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뿌렸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왜 굳이? 어째서?
남들은 날 귀찮아하고 싫어해서 안달인데 말야.
심지어는 부모조차도 이런 나를 버렸잖아. 이젠 부모님 얼굴도 모르겠어. 아마 2살 때 쯤이었던 것 같으니까.
그런데 왜 이 사람의 얼굴이 부모님 얼굴과 겹쳐보일까.
아닌데. 절대 아닌데. 무의식 속 남아있는 부모님의 목소리와 완전 다른데.
생판 남인데. 나는 왜 그 그림자를 이 사람에게서 찾는 걸까.
"웃기는군. 이깟 돌연변이로 뭘....." -타이치
"난 면역이 된 것 뿐이지, 불에 약한 건 그대로에요.
하지만 이 아이가 있다면, 더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거에요.
우리 마을에 대장간은 이곳 뿐이라는 것. 알고있잖아요?"
타이치의 침묵에 그녀의 침 삼키는 소리가 파고든다.
긴장되는 공기를 가른 것은 타이치의 고갯짓.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나를 째려보았다. 내가 움찔하자 그는 이내 나가버렸고,
이내 날 감싸던 그녀는 쭈그려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선 말했다.
"괜찮니? 7살 정도 밖에 안 된 아이를......
상처 봐.... 우선 치료부터 하...."
"왜........."
"응?"
또 다시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인을 했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터져나오는 걸까. 숨이 턱 막힌다.
"왜.... 어째서 그러는거야.....?
동정심이야? 아니면 돌연변이에 대한 흥미?
아니면 나를 이용하다가 버릴 생각?"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니?"
그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애써 울음소리를 삼켰다.
그 뒤에 이어진 한마디와, 그녀가 나를 안아주자 느껴진 그 체온에
나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버리지 않아. 정말이야.
그리고 울고싶으면 울어도 돼."
그녀는 나를 더욱 꽈악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마치 엄마와도 같은 포근한 말로 내 귓가에, 마음에.
"아이니까."
내 모든 것에 와닿는다.
그와 동시에 눈물과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런 그녀의 이름은 밤의 눈이란 의미를 가진,
요루노 유키(夜の雪)
그 싸늘한 시선이 온몸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