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 더 커서, (-) 누님의 키를 앞질렀을 때 즈음.
(-) 누님과 다른 사람들 몰래 벚꽃 구경을 갔다가
어두워진 하늘아래 집으로 돌아가던 일이 있었다.
"누님, 얼른 오세요." -소고
"응? 어, 그래."
우리는 주홍빛으로 물든 이 흙길에 발을 한걸음씩 내딛어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를 보던 나는 이내 짧게 숨을 내뱉고서 뒤를 따라갔다.
오늘따라 왜 이리 작아보이는지.
예전보다 키도 좀 컸지만 어째선지 누님의 등은 작아보였다.
어렸을 땐 한 없이 커보이고 듬직하던 뒷모습도
이제는 한 여자의 작은 등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짐을 짊어지려하니까 그러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쳇하고 찼다.
"올해도 벚꽃 많이 피었네요." -소고
".............."
나의 질문에도 아무 대답 없는 누님.
혹시라도,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걸까.
확실히 나는 누님의 과거에 대해서 전부는 알지 못한다.
적어도 진검과 피를 봐선, 조금 위험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때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시간들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소중해서.
주워담을 수 없는 과거가 파편이 되어
다시 현재가 되는 것이 잔혹해서.
그래서 그녀의 눈에는 오늘따라 노을이 더 붉어보였으려나.
마치 핏빛과도 같아 왠지 모르게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에 묻히던 다른 이들의 피와 생명이.
그런데 그건 알까.
그림자가 한 개가 아니라는 것을.
"대체 언제쯤 우리도 행복한 결말을 맺어볼까요.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는다던가 그럼 좋겠지만." -소고
내가 한숨을 쉬자 누님은 조금씩 걷는 속도를 늦추더니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서 싸늘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너는."
"네?" -소고
"너는 대체 행복한 결말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그녀가 조금은 괴롭지만 어떻게보면 꽤나 식어버린 싸늘한 표정으로
멈추어서서는 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저 지금 처럼 평범한 삶?
언제라도 다른 이를 지킬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는 삶?
그것도 아니라면........
너의 희생으로 인한 다른 이들의 행복?"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
「더....지켜주고 싶었는데..... 넌 나와 너무나 닮았으니까.......」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고선 괴로운 듯 인상을 찌뿌렸다.
나는 당신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는건데.
당신은 내가 없어도 행복하라 말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이를 지키려든다.
당신이 정말로 우리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는건데.
"그게 무슨........." -소고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듯한 눈과 표정으로 말하자
누님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뜨고서 빠르게 낙 옆을 지나쳐 먼저 앞서가버렸다.
"헛소리야. 그냥 잊어."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웃는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상처를 드러내기보단 감추려한다.
그렇게 망가질대로 망가지면서까지 지키려는 건 왤까.
그 진검에 담긴 누님의 과거 따윈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내 앞에 있는 지금의 당신이니까.
아까 내가 한동안 누님을 따라가지 못했던 건,
바로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괴로움과 왠지 모를 의구심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을.
그리고 싸늘하던 눈동자와는 다르게 결의가 담겨있던 그 눈동자를.
그 눈동자에 비추어진 것의 본질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나는 내 앞으로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얼른 와, 소고."
나도 똑같이, 그저 웃으며 그녀를 앞질러가버릴 뿐.
그렇게 얼마나 실랑이가 계속되었을까.
어느덧 다시 주위는 조용해지고 봄바람 소리와 약간씩 쓸리는
벚꽃잎의 미세한 마찰음이 밤의 공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슬퍼지는 이 밤에.
너무나도 행복해서 눈물 짓고 싶은 이 밤.
너무나도 조용한 이 밤의 공기를
갈라놓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뭐 이렇게 가끔 싸우긴 해도, 잊지마 소고."
그 목소리는, 마치 이미 피에 물들어버린
저 달을 씻어내리는 레퀴엠-
"난, 네 편이니까."
정적이 감도는 밤. 이 밤에 흩날리는 벚꽃은
마치 마성처럼 익숙한 감각을 떠올리게 하고.
하나의 빛과 그림자는 그 세계에 섞여
조용히 또 다른 그림자를 맞는다.
행복한 결말에 대해, 물으셨죠.
전 말입니다, 누님.
그 결말이 어떻던 간에 당신이 바보같은 희생따위는 하지 않도록......
내가. 지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