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캄캄하다. 이렇게 무언가가 느껴지고, 어둡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건.
역시. 죽지 않았다는 건가.

'몸이.......'

복부에 상처가 나고 물에 빠지기 까지 했는데도 죽지 않은 것도 신기한데,
몸이 안 움직인다고 그리 당황할 것도 아니였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다. 따뜻하다. 바로 옆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래. 천국 아니면 누군가의 집이려나.

'여긴........?'

힘들게 눈을 떼자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집의 천장 같은 곳이다. 원래 친구들과 지내던 곳은 아닌 듯 했다.
아니, 정확히는 친구였던 자들이겠지.

'신스케..... 어째서..........'

그에 대한 생각은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고 주위를 살폈다.
흐릿하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고 이내 소리도 잘 들렸다.
복부에 느껴지는 이물감. 붕대가 감겨있는 듯 했다.

"붕대 갈아야하는데....어딨더라....." -미츠바

누구?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왠 여자가 보였다.
나보다 한 두살 정도 많거나, 같아보이는 나이.
저 여자가 나를 구한걸까? 아니면 강에 떨어진 뒤 떠내려온 걸까.
뭐가 되었던 간에, 결국 나는 이 부질없는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지금은 왜 또 죽고 싶은건지.

'...........죽여야. 하나.'

나를 구해준 자다. 그리고 민간인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대로 두면 내가 양이지사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내 검은 피를 보았으니. 분명 막부에 신고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다.
유키와 쇼요 선생님에 대한 복수도. 그리고 신스케에게 물어볼 기회도. 전부.

"어? 깨어난거니?" -미츠바

절대 저런 여자가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냐. 아니다. 이젠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이번이 대체 몇 번째 배신이지? 더 이상 믿음은 없어.
망설이지마. 망설이면 죽는것이, 암살부족인 우리 쿠로족이었다.
망설이면 죽는것이 내가 흑영으로 있던 전쟁이었다.

"괜찮......." -미츠바

나는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바로 검을 집었다.

"큭........!"

그리고는 이번엔 망설임없이 단번에 검을 뽑고서
일어나 내 앞의 여자의 목을 뒤에서 오른팔로 감아 움직임을 봉쇄한 뒤
그 여린 고동이 느껴지는 목에 칼을 들이댔다.

"꺄악.....!!" -미츠바

그녀가 소리치자 마자,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흑발에 꽤나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남자. 그 역시 나와 나이차가 크진 않아보였다.
검을 가지고 있다. 도장? 아니면 그냥 사무라이?

"어이, 당장 내려놔!" -히지카타

뭐가 되었던 간에, 아군은 아닌 듯 싶다. 내게 검을 겨누는 그.
그리고 그런 그 자의 옆에 있는 어린 남자아이 한 명.
이 여자와 닮았군. 가족인가?

"누나!" -소고

역시. 많이 닮았다 했다.

'가족............'

그 단어가 내 뇌리에 스치고, 계속해서 거슬렸다.
내가 단 한 번 가졌던 단어. 지금은 오히려 들으면 쓰린 단어.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단어. 가족. 저 소년에게서 내가 그것을 빼앗을 자격이 있는걸까.

'......있을리가. 없잖아.'

나는 이를 악 물고서 내 앞의 둘을 째려보았다. 싫어.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싫단 말야.
그런데 왜 자꾸 내게서 믿음을 빼앗아가는거야.
그 무엇도 믿지 말고 내 자신만 믿으라던 타이치의 말.
나도 결국 그 자와 똑같아 진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역겨웠다.

"어서!!" -히지카타

내가 그렇게 또다시 망설이는 그 때, 상처 투성이인 내 팔에
무언가 따스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와닿았다.
내가 잡아둔 그녀가, 자신의 목을 휘감은 내 팔에 손을 얹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흠칫했지만 이내 다시 검을 바로 잡았다.

"위험해, 미츠바!" -히지카타

"괜찮아." -미츠바

그러더니 오히려 미소를 띤 채 손을 뻗어 내 검의 칼날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나에게 웃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유키가 겹쳐보였기에.
칼날을 쥔 손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내가 당황해 그녀의 목에서 팔을 빼고 뒤로 물러나려하자
이젠 내 손을 잡아오기 까지 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미츠바

".............!"

그 한마디에, 몸이 얼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몸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땡그랑. 검정색의 칼날이 요란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그녀는 그대로 상처투성이인 나를 끌어안았다.
그것도, 내 검으로 인해 상처가 난 그 손으로.

"잠도 편히 못자고..... 일어나자마자 옆에 있는
사람을 적으로 착각할 만큼 숨가쁘게,
괴롭게, 힘들게, 슬프게 살아왔구나......" -미츠바

뭐야. 당신 뭐냐고. 뭔데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 말야.
게다가 왜 하필 선생님과 비슷하게 구는거야.
내가 휘두른 검에 상처 입고도 날 거두어준 그 분처럼 구는거야.
네가 그러면 나 또다시 눈물이 나버리잖아.

"괜찮아. 이제 더 이상
괴로워 할 것 없단다." -미츠바

그 한마디에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던 내가, 울음소리를 내버렸다.
이를 악 물고서 울음소리를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난 그대로 그녀에게 기대 축 늘어진 채 흐느꼈다.

마치 내 등을 토닥여주는 그 모습과 미소가, 너무나 그 사람들과 닮아서.
유키와, 그리고 쇼요 선생님과 순간 겹쳐보여서.

나는 그렇게 또 다시 울어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그들은 강가에서 발견한 검은 소녀를 데리고서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