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배의 갑판 위.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갑판 위로 드리우는 달빛.
그 달빛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밝고, 엷게 모든 것을 비춘다.
어둠과 달빛이 동시에 짙게 깔린 갑판 위에 울려퍼지는 금속의 마찰음.
그리고 그 갑판위를 뛰어다니는 하얀 남자와 검은 남자.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타이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왼쪽 팔이 베어 검은피를 흘리는 타이치와
오른쪽 허벅지에서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는 긴토키.
둘 다 꽤나 지친 듯 했지만 타이치가 워낙
감정이 무뎌서 그런지 긴토키만 힘들어보였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단 말이지." -타이치
또 다시 두 개의 검이 맞붙었다.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힘에 긴토키는 검을 쥔 두 손이 조금 떨렸다.
쿠로족은 야토족만큼 힘이 세진 않지만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이 자는 그저 싸움을 즐기고 싶을 뿐.
그렇다는 건 어쩌면 긴토키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도 같았다.
"대체 뭘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는거지?
그 돌연변이 녀석이 그렇게 중요한가?" -타이치
"적어도 댁의 안부보다는." -긴토키
그렇게 하나둘 근처에 있던 천인들의 수도 줄어가고,
이내 카구라도 이쪽으로 왔다.
카구라가 달려와선 우산을 타이치를 향해 내려치자
그는 검집하나로 그 힘을 막았다.
한 손으로는 긴토키, 한 손으로는 카구라를 막으면서도 무덤덤한 표정.
"한 때는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던
야토족이 이 정도라니. 실망인데." -타이치
카구라가 화가 난 건지 안면근육이 조금씩 뒤틀리자 긴토키가 소리쳤다.
"진정해, 카구라!
이쪽은 나한테 맡기고 넌 어서
(-)쪽에 가봐!" -긴토키
카구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우산을 치우고서
빠르게 갑판 아랫쪽으로 향했다.
그 때, 오타에가 갑판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멈춰섰다.
"누나! 무슨 일이에요?" -신파치
신파치가 놀라선 후다닥 달려오자 그녀는 혼비백산이 되어서 말했다.
"아....안에 어떤 분홍머리 남자애가....." -오타에
그 말에 카구라는 그것이 카무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갑판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려는 그 순간,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섬뜩하게,
그리고 한 걸음씩 천천히 울려퍼졌다.
"에~ 아저씨 치사해.
벌써 사무라이 형씨랑 한 판 한거야?" -카무이
그리고 이내 갑판위로 올라와선 달빛 아래에 모습을 나타내는 한 마리 야토.
그리고 그의 팔에 안아들고 있는 검은색의 그림자
옆구리에는 검은색의 꽃을 피운채 카무이의 팔에 들려있었다.
"누님!!" -카구라
카구라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타이치는 재미있는 구경이라면서 잠시 칼부림을 멈추었다.
"은발의 사무라이 형씨. 이거 형 꺼야?" -카무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카무이.
그를 본, 그리고 그의 팔에 들려있는 그녀를 본 긴토키의 표정이 굳어갔다.
또 다시 눈동자가 흔들리고 치아와 치아가 마구 부딪혔다.
으득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너무나도 섬뜩했다.
"싸우는 중엔," -타이치
그런 그에게 다시 타이치의 검은 칼날이 파고 들었다.
"한 눈을 파는게 아니야." -타이치
긴토키의 오른쪽 어깨에 붉은 피가 조금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음?" -타이치
칼에 베인채로 가만히 서있는 긴토키에게서 아까와는 전혀 다른 것이 느껴졌다.
타이치는 잠시 눈살을 찌뿌린채 그를 주시했다.
비교도 안되는 살기. 마치 인간이 아닌 듯 했다.
그래. 그 모습은. 하얀 은발을 가지고서 붉은 피를 흘리는 그의 모습은 실로
"이건........." -타이치
야차-
그 순간, 긴토키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철컥하고
다시금 쥐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아주빠르게 타이치를 향해 내리쳤다.
"뭐지. 대체 네 놈은 뭐냐." -타이치
이를 으득 갈고서 눈의 동공이 열린 채 검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검을 내리치는 그는 이미 의식이 없는 것 과도 같았다.
그렇게 타이치가 처음으로 무표정에서 재밌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둘 사이에서 쇠와 쇠의 마찰음이 퍼지는 때에,
다른 한쪽에선 카무이와 다른 사람들간의 대화가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