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잿빛이었다. 그 잿빛 하늘아래의 대지도, 황량하기 그지 없다.
숲도 있고. 풀도 있다. 색이 있고. 생명체도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너무나 공허했다.
결국 나는 내가 염려하던 모습 그대로 되어버렸다.
시체더미를 의자 삼아 그 검은 피 대신 다른이의 붉은 피를 손에 묻힌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멍한 눈빛.
감정없는 이 표정부터 행동까지. 전부 내가 염려하던 내 모습이다.
"비가..... 오려나........"
하늘을 올려다 보며 눈물을 흘린다.
차라리 떨어진 빗방울이 눈에 떨어진 거면 나았을 텐데.
나는 물에 약하다. 비를 맞으면 움직이기도 힘들고,
심지어 물에 오래 노출 되면 검은 연기에 몸이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곳 비가 내릴텐데도 일어나지를 못하겠다.
"미안해요.........."
내가 죽여버린 시체들에게 사죄하듯 중얼거린다.
이 자들은 산적이다. 분명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도 가족이란 것이 있었겠지.
나는 그들의 자리를 빼앗아 내 삶을 연명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나도 정말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살아야하니까. 어떻게든 살아서 복수하고 싶었으니까.
"아......"
투둑거리는 소리가 점점 늘어가고 공기가 점점 습하고 차가워져갔다.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오래 맞으면 위험하다.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아까 봐두었던 동굴로 향했다.
"윽.....!"
이젠 걷는 것도 힘들다. 발을 헛디뎌 흙탕물 위에 넘어지기 까지.
오늘따라 일이 계속해서 꼬이기 시작한다.
흙탕물에 넘어지니 더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드는 한 가지 생각.
아, 이런거구나. 더럽혀진 연꽃이라는 것이. 흙탕물 속에서도 고고한
하얀 연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힘이...... 안..... 들어가........"
이대로 정말 죽는 걸까. 이런 생각은 이곳에 온 뒤 수도없이 많이 했다.
내 피의 색과 회복력, 그리고 속도와 힘.
그리고 내 검을 보고 접근하는 이들을 전부 베어낼 때도,
그리고 비에 쫄딱 젖어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죽을 것 같을 때도.
"유키........."
그럴 때마다 유키를 애타게 불러본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더이상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구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나 혼자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시체에서 나온 돈이나 물건, 음식 등으로 구질구질하게
연명을 해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라는 이름을 부르면 유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눈물이 마구 차오르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렇게 눈을 딱 감아버리자, 누군가의 온기가 내 볼에 와닿았다.
"이런, 몸이 많이 차갑군요......." -???
어떤 남자의 얼굴이 흐려져가는 시야 속에 보였다.
적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따뜻해.......'
아까까지만 해도 추운 것도, 따뜻한 것도 느낄 수 없었던 이 공기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안아드는 그 손만이 너무나 따뜻했다.
마치 그녀와도 같은 손으로 나를 안아오는
누군가의 손길에, 안심해버린건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